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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기농 Aug 09. 2020

텅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해

수능 이후 텅 빈 시간에 나를 담는 법




이 주쯤 되었을까요, 친척들과 모인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렵게 대학교 입학하고도 코로나로 학교도 한 번 못 가보고 어떡해. 평생에 한 번 새내기를 그냥 보내고, 불쌍하네.”     


말을 듣고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생각은 “어렵게 대학교에 입학하”려고 애쓰는 고3 학생들이었습니다. 수능을 위해 들인 습관이 아직 남아있는데, 어느새 2021 수능이 3달 하고 몇 주 정도밖에 남지 않았더라고요.


고3 교실에서 친구들과 ‘졸지 말자’며 버텼던 순간이 아직 생생합니다. 돌이켜보면 같은 처지에서 힘내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큰 의지가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마음 놓고 친구들과 부대낄 수 없는 고3 학생들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을지, 만나면 과자라도 하나 사주고픈 마음입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고3을 거치고 성격이 이상하게 예민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래는 안 그랬는데 고3이 사람을 다 망쳐놨다고 말이죠. 전에는 시끄러운 TV 앞에서도 책을 잘만 읽었으면서 이제는 소음이 있으면 간단한 글 읽기도 어려워졌으니,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고3이 사람을 변하게 할 수 있습니다. 네, 다들 조심하세요. 하하. 그런데 뭐, 예민해지면 어떻습니까. 고생 끝에 낙이 오듯, 자유의 시간을 가질 것을!


당시 저는 예민해진 부작용을 뒤로하고 시간의 자유를 만끽하기로 했습니다. 12시간이 넘도록 잠만 자더라도, 방에 틀어박혀 스마트폰을 부여잡고 3시간씩 낄낄거려도 지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고작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드라마, 웹툰을 보는 1분 1초에 죄책감을 느끼고 오락성의 앱을 모두 지워버렸는데, 이제는 게임앱도 깔고, 내가 묵혀뒀던 수많은 오락거리를 죄책감 없이 몰아보고 자유로이 즐길 수 있단 사실이 너무 기뻤습니다. “수능만 끝나면 제대로 신나게 놀 거야.”라며 나를 몰아세우던 시간 동안의 염원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도 재미가 없었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보름이 채 되기 전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치장, 액션, 흥미진진하고 치밀한 이야기 모두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원래 이렇게 재미가 없었는지, 자꾸만 졸리고 지루하고 멍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이 알 수 없는 기분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명작이라는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 찾아볼 의욕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기운을 누군가가 빼앗아가는 느낌과 머리가 탁해지는 기분이 공존했습니다. 숨만 쉬며 반복되는 하루에 화도 났습니다. 분명 즐거워야 하는데 왜 즐겁지 않지?

  

내가 뭘 하는 거지. 하나도 재미없는데. 이유가 뭐야. 이상해.

     

나 왜 이러지?     

     





수능 이후이자 대학에 가기 전, 그 사이의 석 달의 시간 동안은 제게 주어진 목표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무런 목표도 의무도 없는 텅 빈 시간이었습니다.


수능이 뭔지도 모르던 초등학생 때부터 막연히 “수능을 잘 치고 좋은 대학교에 가야지.”하고 공부를 잘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오직 공부를 잘하기 위한 목표로 살아온 삶이었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공부할 필요가 없게 된 저에게는 목표와 삶의 목적이 없었습니다.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서 깨달았습니다.


남이 목표를 정해주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삶에서 자신에게, 스스로 준 목표가 단 한 번도 없었구나.


텅 빈 시간을 채울 내가 없구나.




텅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해 '나'를 찾아야 했습니다.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옛 꿈을 찾았습니다. 글을 쓰고 싶다는 꿈. 현실성이 없다고 모두가 눈치 주었던 그 꿈을 찾아 시작하였습니다.


웹소설이라는 장르는 아주 독특했습니다. 다른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 비해 오타가 있어도, 앞 뒤가 맞지 않아도, 역사 고증이 좀 틀리더라도 작가의 자질을 논하며 깎아내리지 않았습니다. 주로 이야기의 흡입력으로 독자가 생성되었습니다.


소설을 쓸 때면 철저한 사전 조사와 많은 공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저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었습니다. 부담 없이 써도 좋았고, 접어뒀던 꿈을 다시 꺼내어 출발하기에 원만했습니다. 잘 못 써도 괜찮다는 면죄부와 함께 한계 없이 쓰면서 텅 빈 시간을 채웠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가 밝은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고, 머릿속을 선명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8월 내로는 웹소설 플랫폼에 글을 올리려고 합니다. 남들에게 선보이는 첫 번째 소설입니다. 머릿속에만 있던 소재들이 글로 형성화되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면 기분이 묘합니다. 더 빨리 글을 쓰지 않고 뭐했을까 하고요. 기존 웹소설의 흐름과 비슷한 것보다는 다른 글을 쓰고 싶어서 고심하다 내놓았기에 사람들의 반응이 더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낯선 소재에 혹평을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두렵지는 않습니다. 글을 잘 쓴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지만, 내 글을 보여주는 걸 더는 망설이지 않고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합니다.






내 이름을 건 책을 출판하는 것을 목표로 글을 써나갈 겁니다. 스스로 준 첫 번째 목표입니다. 에세이, 단편소설, 중장편소설, 웹소설, 논설문 고루고루 써가고 있습니다. 많은 글을 쓰며 글 속을 진정한 나로 채워 넣으려 합니다. 자기 만족으로 쓴 글들이 언젠가 다른 이에게 만족이 되어 출판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하겠지요.



차근차근 글을 써나가며 목표를 이뤄가려 합니다. 타인의 인생이나 흐름에 따라가는 목표가 아니라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목표를 세운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자신을 북돋워줍니다. 내가 세운 목표에 따라 움직이는 내가 자랑스럽습니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 살아온 삶이 부끄럽지는 않지만, 남들 앞에서 눈에 빛을 띠며 내놓을 저만의 삶을 찾은 듯합니다. 텅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해 글을 쓰는 삶을 꾸려나가려 합니다.




수능을 치른 고3들이 한 번쯤은 저와 같은 상황을 겪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막 수능을 치른 친구들도 매사에 의욕이 없어졌다 했거든요. 텅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한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으면 합니다. 저는 꿈을 찾았고, 글을 씁니다.


여러분은 텅 빈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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