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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수 Mar 03. 2022

고추 같은 매운 말을 꽃으로 바꾸기

기지

548 나누기 87문제를 내주었다. 몫은 6 나머지는 24이다. 틀렸다. 나누기의 의미는 아는데, 공식을 모른다. 

아들을 붙들고 나눗셈 문제를 내주게 되었다. 답이 틀렸다고 말할 때마다, 얼굴이 굳어지고, 목소리가 급속도로 냉랭하게 굳어져 간다. 곧이어 소파에 몸을 던진다. 소파에 온몸을 비비고 '아~,'하는 짜증 섞인 한숨 소리에 소파가 내려앉을 것 같다. 

이 문제 하나를 들고 앉아 있는 아들을 보며 ‘짜증 내지 말자!’라고 말하는 내 마음도 답답하다. 우리는 학기 초에 모자라는 수학을 뒷받침하기로 했다. 부족한 수학(곱셈과 나눗셈)을 풀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오늘을 견뎌보니, 이 시기를 잘 견뎌내는 것이 나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편안했던 내 몸은 돌덩어리라도 된 것처럼, 서서히 굳어 간다. 

이런 나와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의 붉게 상기된 얼굴과 짜증은 계속된다. 울컥하는 내 마음을 내려놓는다. 다시 내 목표를 돌아보았다. 나는 아이가 곱셈과 나눗셈을 충분히 연습해서 5학년 교과목을 따라가는 데 문제가 없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 내 마음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리니 힘들고 숨이 답답해도 내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아이도 곱셈과 나눗셈을 잘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 해도, 계속되는 틀린 답에 얼마나 속상할까. 아이의 마음을 몰랐던 내 잘못이었다.


"시현아, 잘하고 싶은데, 틀린 답이 나오니까 속상한 거니? 우리 나눗셈 말고, 곱셈으로 바꿔볼까?"


 나눗셈이 아니라 곱셈으로 바꿨다. 100의 단위 곱하기 10의 단위 문제는 풀 수 없다. 문제의 난이도를 낮추고 100의 단위 곱하기 1의 단위로 내렸다. 다시 10의 단위와 10의 단위를 내어 준다. 구구단 값을 물어보면서 문제를 풀어냈다. 마치 커다란 전투에서 승리한 장수 같다.

도복으로 갈아입고서 “엄마~, 8시 20분까지는 올 거니까, 로제 떡볶이 주문해 놔.”라고 마치 개선장군처럼 말하며 현관을 나서는 아들을 배웅했다.

아들이 소파에 구멍이라도 낼 듯, 온몸을 비벼대는 이유를 찾았다. 이 정도는 풀겠지 싶어서 적어 주었던 문제가 아들에게 버거웠다. 엄마가 되어 아들의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안했다. 마지막 문제를 아들이 풀고, 내게 설명하면서 또 한차례 폭풍 같은 몸부림이 있었다. 그동안 나의 숨통이 꽉 막혀 아들 모르게 입으로 숨을 줄기차게 내뱉어야 했다. 

내 진심을 알아보고, 고추 같은 매운 말이 나가지 않고, 배려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 '기지'의 미덕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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