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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하루 Jun 11. 2023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가끔 어려운 엄마와의 관계

엄마는 모든 사람이 보아도 선하고 어진 사람이었다. 아빠가 힘들게 할 때에도 그저 인내했고, 화를 내지 않았다. 불같은 우리 아빠는 나와 동생에게 회초리를 자주 휘둘렀지만, 나의 기억 속 엄마가 회초리를 든 적은 단 한 번이었고, 그 한 번도 곧바로 미안한 기색으로 나를 안아주고는, 약을 발라주었다. 엄마는 항상 남을 돕는 일에 앞장섰고, 뉴스를 보며 누군가의 아픔과 슬픔에 함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었다. 외유내강의 우리 엄마가 좋았고, 엄마를 보며 어릴 때의 나는 커서 엄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주어진 모녀의 역할이 이 생에 처음인지 그런 걸까, 아니면 내가 엄마를 너무 크게 보아왔기 때문일까, 가끔 엄마가 하는 말들은 나에게 큰 상처로 다가와 마음에 돌덩이처럼 얹힌다. 


몇 년 전 대학원을 가고 싶다는 나에게 엄마는 여자가 가방끈이 길어도 소용없다고, 시집만 잘 가면 된다고 했다. 시집가서 집안일하고 아이 키우다 보면 어차피 배운 것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꿈을 향해 달려가겠다는데, 왜 엄마는 응원은 못해줄 망정 나의 꿈을 밟아야만 했던 걸까. 당신의 경력이 결혼 후 나와 나의 동생을 기르느라 단절되었기 때문일까. 나를 위해 해준 엄마의 그 말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가슴에 유리조각처럼 박혀있다.


오늘 나는 친구를 만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혼자 할 것들을 하고 있었다. 걸려온 전화 넘어 엄마는 남편이 집에 있냐고 물었고, 나는 남편은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고 했다. 남편이 집에 있다고 했어야 했던 걸까, 나의 얘기를 들은 엄마는 '니 남편 관리 잘해라'를 외쳤다. 


남편은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자주 노는 사람도 아니었고, 여사친이랄 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내가 회사 사람들과 노느라 첫차 타고 다음날 집에 갔던 적은 몇 번 있다. 결혼했어도 가끔 각자 사람들을 만나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지내는 것도 우린 괜찮았다. 우리의 관계는 우리가 어련히 알아서 하는 건데, 나와 남편의 관계를 엄마가 살아온 삶의 경험에만 빗대어 말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던 것인지 그렇게 엄마의 그 한마디는 나의 불안을 자극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 없고, 완벽한 부모가 없듯이, 완벽한 결혼생활은 없다. 그렇기에 우리의 결혼 생활이라고 완벽할 수는 없다. 서로를 상처 줄 때도 있고, 서로가 멀게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우리는 결국 서로를 생각하려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 어딘가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를 신뢰하기 때문에 그(녀)가 나만을 사랑할 것이라는 어찌 보면 맹목적일 수도 있는 믿음을 가지고 결혼을 한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항상 진실될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을 넘어 행동이라고 믿는 사람으로서, 내가 남편과 함께하기 원했던 이유는 그는 시간이 지나도 행동에 기반한 사랑을 해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엄마의 그 한마디가 갑갑하게 느껴졌던 까닭은 단순히 남편을 신뢰를 저버리는 사람들과 동급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의 믿음과 신뢰를 부정하는 것 같았기 때문일까. 나도 인간이기에 진실되지 않을 수 있는데 엄마가 나에게 남편 관리 잘하라고 한다면, 시어머니도 남편에게 '아내 관리 잘해라'라고 외치셔야 하지 않을까. 결혼생활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신뢰를 갖지 말라고 하는 것도 같았다. 


참 아이러니했다. 나는 부모님의 결혼생활을 보며, 서로를 사랑할까 싶을 때가 많았고, 나는 그들과 같은 결혼생활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자식들이 부모님처럼 결혼생활하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본이 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인 걸까. 그들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리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걸까. 부모가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삶에 행복한 부부관계란 존재하지 않는 걸까. 


나의 기억 속에 가족은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그렇기에 얼른 나의 가족을 꾸리고 싶었다. 내가 자라온 가족과는 달리 화목한 가족을 가지고 싶었다. 지금 내가 선택한 가족이 내가 원해왔던 이상적인 가족일지 아닐지는 아직 말할 수 없지만, 벌써부터 신뢰가 아닌 불안을 권유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를 위해 던진 엄마의 조언은 정말 나를 위한 말이었을까. 스스로를 위해 했던 말이었을까.


부모들은 자식들이 말을 안 듣고, 자신들을 너무 힘들게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부모라는 존재도 자녀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걸 그들은 알까. 엄마 딸로 산지 30년이 넘었지만, 엄마와 딸의 관계는 여전히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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