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생계유지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이상적이고 행복한 일인가. 별 거 아닌 듯 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걸로 먹고살 수 있는 돈까지 벌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행운이다.
아마 통역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 중에서 통역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짐작한다. 이중언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우선 B언어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높아야 한다. 혹은, B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중언어 구사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언어를 통해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언어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흥미로운 일일 수밖에 없다.
통역사에 대해 대단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 이 글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게도 위안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일에 대한 애착이 클수록 수반되는 상실감이나 무기력함, 불안함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어릴 적 한 때 나는 배우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수많은 직업을 제대로 체험해 볼 수 있는 배우가 부러웠다. 경찰관, 선생님, 운동선수, 대기업 사원 그리고 사극에서 나오는 현존하지 않는 직업에 이르기까지 배우는 하나의 삶에서 다양한 자아로 살아볼 수 있는 정말 멋진 직업 같다.
통역사도 비슷한 점이 참 많다. 통번역대학원에 입학하면 정말 다양한 주제를 다루게 된다. 역사, 외교, 경제, 마케팅, 안보, 군사, 사회, 환경, 의료, 법률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텍스트들을 다루게 된다. 학교에서 2년 동안 이렇게 다양한 주제를 다룬 다양한 텍스트 (연설문, 뉴스 기사, 사설, 보고서 등)를 통역하거나 번역하게 되면서, ‘전문 분야’라는 것에 대해 좀 무뎌지게 된다.
사회에 나와서 통역사로 일하며 맡는 통역 주제들이 딱 어느 분야에 집중된 것이 아니었다. 회사 홈페이지 번역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생산품질관리를 주제로 한 통역을 하게 되어서 열심히 미생물 종류를 외우기도 했다. 블록체인 기업 설명회 통역을 하고, 바로 이틀 후에 화장품 수입 통관 관련한 회의 순차통역을 하기도 했다. 자막 번역을 하다가, 법률 문서 번역을 하기도 했고 그러다가 5G 도입 관련된 IT 회사 통역을 맡기도 했다. 딱 한 분야에만 집중할 수 없는 직업이다.
통역사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새로운 분야의 지식을 함양하며 계속해서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직업이다. 다양한 분야를 공부할 수 있는 직업이 생각보다 없다. 이런 점에서 지속적인 자기 발전을 꾀할 수 있는 것이 통역사라는 직업의 최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점 때문에 본인이 목표하는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 광장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직업에 대한 애착이 큰 만큼 본인의 실력이나 성과에 크게 심적으로 동요하게 되는 것이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통역사 일을 시작한 지 4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개인적으로 느꼈던 점, 경험들을 공유하고자 기록을 시작했다. 좋은 경험도 있었고, 좋지 않은 경험들도 있었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이 예비 통번역사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고, 현재 통번역사로 일하시는 분들에게는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