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혜나 Nov 06. 2023

내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인가


내가 무엇보다 선호하는 일은 특히 내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고 또 험하게 살더라도 나로서는 행복할 수 있으므로 지금 당장은 값비싼 양탄자나 좋은 가구, 맛있는 요리, 그리스식이나 고딕 양식의 주택을 손에 넣기 위한 돈을 버는데 내 시간을 써버릴 생각이 없었다. 아무 장애 없이 그런 것들을 손에 넣을 수 있고 그다음에 어떻게 써야 할지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들을 추구하는 건 그 사람들에게 맡길 생각이다. 부지런하고 또 일 자체를 위해 일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이 보이는, 어쩌면 그 덕분에 더 나쁜 해악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는 이들이 있는데 나로서는 지금 그런 이들에게 할 말이 없다.

월든 <소담출판사> p104

회사를 나온 후 계속 고민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지금 딱히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다. 물론 스스로 생각할 때 기준으로. 이렇게 말하면 다들 내가 엄청난 부자인 줄 알겠지만 나는 세상이 말하는 부동산이나 동산이 풍족한 부자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사실 나 스스로를 마치 부자처럼 느낀 지는 꽤 되었다. 원하던 데로 시골로 귀촌했고 오래된 농가 주택을 실속 있게 고쳐 내 삶에 꼭 맞게 맞추어가고 있는 집이 있고 사시사철 언제든 나가 돌볼 수 있는 적당한 마당과 텃밭이 있다. 평생 키워보고 싶었던 대형견을 키우며  논 사이를 산책하고 아름다운 노을 지는 하늘을 매일 본다.  토끼 같은 아이들이 셋이나  매우 잘 자라고 있고  다섯 식구 모두가 매우 건강하다. 어디든 달려갈 수 있는 넉넉한 차가 있고 오늘 먹고 싶은 걸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재력이 있다.


 약간 걱정이 되는 부분이라면 앞으로 아이들이 독립하게 될 때 자금을 조금 조달해 주기 위해 모아놓은 돈이 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고, 꾸준히 일을 해온 남편이 일을 할 수 없을 때가 오면 어떡해야 할지, 이 사람은 언제까지 계속 일을 해야 할지, 그렇다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행복할지 하는 정도의 생각이다.


소로우는 내가 퇴직 후 고민해 온 딱 그 지점을 간결한 문장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무엇보다 선호하는 일은 특히 내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고 험하게 살더라도 나로서는 행복할 수 있으므로 지금 당장은 돈을 버는데 내 시간을 써버릴 생각이 없다.


 이 문장을 읽으며 무릎을 탁 쳤다. 내가 바라는 삶이 이거구나 싶어서. 그리고 반가웠다. 소로우도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을 생각했었다는 사실이. 나르시시즘에 빠진 게 아닐까 싶은 그런 이단아가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위로 같은 거랄까.


 요즘 나는 꿋꿋하게 우리 동네에 서점을 준비하고 있다. 열에 아홉은 누가 거길 오겠냐며 있는 서점도 없어지는 판에 시골에서 작은 서점을 열겠다니 무슨 생각이냐고 말한다. 사실 그 목소리 중에 제일 큰 목소리는 나 스스로의 것이었다.

보증금 200에 월세 25만 원짜리 오래된 상가 건물을 얻어서 두 달째 맨손으로 인테리어를 하고 있다. 여전히 한참 진행 중이다. 언제 끝날지, 언제 오픈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처음에 오랫동안 비워져 심란한 상가를 보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도 넘어가고 싶었다. 원하는 데로 잘 살아내고 싶은 삶 위에 놓은 첫 번째 허들을 용케 잘 넘고 싶었다. 그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토록 갖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내 공간을 내 손으로 만든다. 그러는 동안 머리 속도 마음속도 정리되어 갔다. 두 달간의 막노동을 거치며 매일 어깨가 뭉치고 팔에 근육통이 생기고 허리가 아팠다 나았다를 반복하면서 몸에 근육이 붙는 만큼 정신도 단단해지는 것 같다. 이제는 누가 뭐래도 이곳에서 작은 서점을 열 수 있을 것 같다. 하굣길에 들러 책 한 권 훑고 갈 아이들. 모여 앉아 같이 글을 쓸 사람들. 도란도란 수다 떨 책, 뜨게 살롱 시간. 촛불 하나만 켜 놓고 와인잔 부딪히며 속 얘기를 나눌 진한 밤들. 그날들이, 그 사람들이 보인다.


 끝으로 나는 소로우가 이 문단의 끝에 붙인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웃는다. 나의 남편 같은 사람에 대한 말. 나는 정말 그런 이들에게는 할 말이 없으므로.


일 자체를 위해 일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이는 어쩌면 그 덕분에 나쁜 해악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는 이들. 나로서는 지금 그런 이들에게 할 말이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을 확실히 배우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