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카드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유치원 시절 산타할아버지가 비둘기 반에 와서 선물을 나누어주셨다. 모두 각자의 부모님이 준비하신 선물이었고 산타 분장을 한 원장 선생님이 나눠주신 것이었지만,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반 아이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아 선물을 풀었는데 내 선물에만 카드가 있었다.
자신들의 선물에는 카드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반 애들이 다 울기 시작했고, 나는 멋쩍고 미안하면서도 우쭐한 기분으로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엄마는 유치원 선생님에게 혼났다고 한다. 그냥 집에서 하던 대로 카드를 써준 것일 텐데 선생님도 엄마도 참 곤란했을 터다.
난 그것도 모르고 집에 가서 “난 좀 특별한가 봐. 산타할아버지가 나만 카드 주신 거 있지. 날 사랑하시나 봐.” 엄마한테 자랑했다. 엄마가 동공 지진하며, “카드… 안 주는 거래?” 하며 얼버무리다 사색이 되었던 게 생각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크리스마스엔 가족끼리 카드를 주고받았다. 고등학생이 되어 기숙사에 있을 때도 엄마 아빠는 꼬박꼬박 기숙사에 카드를 부쳐줬다. 난 좀 귀찮아하며 잘 안 썼던 것 같다.
이번에 아빠는 카드가 늦게 도착할 것 같다고 어쩌냐고 나에게 전화를 했었다. 아니, 난 쓰지도 부치지도 않았는데 크리스마스 카드가 대수인가 싶었다. 전화도 자주 하는데 굳이 저걸 수고롭게 쓰고 부칠까. “힘들게 왜 보냈어, 집 내려가면 주지 그랬어요” 했더니 “에이 그래도…” 그러고 마셨다.
카드를 받고 나서 내가 한해도 빠짐없이 엄마, 아빠, 언니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내가 쓴 건 손에 꼽는다는 사실도.
사람 사는 게 참 다 비슷하다. 어찌 보면 별다를 일 없이 그냥 보통의 사람으로 있는 시간이 삶의 대부분이다. 살아도 살아도 끝이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대학원에 가서 무엇이든 과정 중에 있는 상태를 오래 지속해서 생긴 기분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살아가는 데 너무 많은 일이 필요한 것 같다. 삶은 참 길고 대체로 행복하지만 지리멸렬할 때도 많다.
지겹고 지칠 때 너는 사랑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다, 한마디 해주려고 매해 제일 예쁜 카드를 고르고, 제일 따뜻한 마음을 담아 보냈나.
스스로가 별 볼일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날에 넌 특별하다, 넌 참 소중하다, 넌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지워지지 않게 다시 적어주려고 그랬나.
요즘은 그 마음이 선연하게 보인다. 이번엔 답장을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