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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웅 May 24. 2022

당신이 처음 사랑했던 대상은 누구인가요?

아득한 첫사랑의 기억

“당신이 처음 사랑했던 대상은 누구인가요?”

내가 진행하게 된 영화모임의 첫 질문이다.

질문은 만들기 쉬웠는데 답을 하려니 말문이 막힌다.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대답을 먼저 듣고 싶어진다.

그래도 내가 물었으니 내게도 답이 있어야겠다.


질문 밑에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고 써뒀다.

동물이나 사물이어도 되고, 어떤 분위기 같은 것이어도 무관하다고. 색감일 수도 있겠다고 부연했다.


그렇다면 내가 처음 사랑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곰곰 생각해보자니, 분명 엄마 아빠였을 것 같다.

그래도 좀 더 다른 답을 내놓아보자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고도 당연하게 사랑하게 된 대상 말고

내가 처음 ‘이건 사랑이다!’라고 감각하고 인지하게 만들었던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의 유년시절을 톺아나가다 보니 내게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남았다.


내가 사랑했던,

처음 사랑을 주고자 노력하게 만들었던

‘쥬쥬’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하교하던 길에 아이들이 몰려있는 곳을 보게 되었다.


지금은 서울에 살지만, 당시 나는 시골에 살았었다.

논밭이 좌우로 펼쳐져 있었던 좁은 샛길에서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하얀 강아지 쥬쥬를 처음 봤다.


삽살개처럼 생겼지만 체구는 작은 믹스견인듯했다.


아마도 내 기억이 맞다면, 내가 그 강아지를 보고 처음 했던 말은 “와! 강아지다!”였던 것 같다.


하염없이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처음 만난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이 강아지의 주인은 여기서 멀지 않은 집 농부 아줌마라는 것, 그 집 대문은 늘 열려있어서 누구든 들어가서 쥬쥬와 시간을 보내도 된다는 것.


내가 살던 동네는 (지금은 모두 아파트로 바뀌었고 시대가 변했듯 이웃 간의 교류가 많지 않지만) 그저 지나가면 누구든 인사를 나눌 수 있고, 아무 집이나 대문이 열려있으면 우르르 몰려가 개를 구경하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말도 안 되는 광경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찌 됐든 그날 이후로 매일 방과 후에는 열댓 명씩 몰려가 쥬쥬와 놀았다.


쥬쥬네 집 마당 계단에 아이들과 앉아서 돌아가면서 쥬쥬를 안아보기도 했다.

내 차례가 좀처럼 오지 않아 애가 타기도 했다.

쥬쥬는 참 순하고 사랑스러웠다.


가끔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꼬질꼬질해졌을 때도

눈망울만큼은 까맣고 맑게 빛났었다.


순하디 순한 쥬쥬, 언제나 사랑받는 쥬쥬,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우리 동네 인기스타 쥬쥬.

그런 쥬쥬에게 나는 숱한 아이들 중 하나였다.


쥬주에게 나는 낯선 아이에 속했다. 나보다 훨씬 오랫동안 쥬쥬를 보러 다닌 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에게 쥬쥬는 잘 안겨있었다.


나는 2-3살 많아 보이는 그 아이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쥬쥬가 좋아해줘?”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질문은 사랑받고 싶다는 말과 다름없는 듯하다.


“자주 보러 오면 돼. 여기서 내가 제일 많이 왔거든.”


그렇게나 쉽다니!

쥬쥬에게 사랑받는 법이 참 쉽다고 느꼈다.

그저 많이 사랑해주면 된다는 말이 아닌가.

그런 거라면 자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학교가 끝나면 운동화를 고쳐 신고 언제나 쥬쥬네 집으로 달려갔다.

아이들이 둘러싸고 있으면 먼발치에서 기다렸다가

쥬쥬를 쓰다듬을 수 있으면 쓰다듬어주고

다른 아이가 안고 있을 때도 그저 “사랑해 쥬쥬야”라고 조용히 말을 건네거나 마음을 전할 따뜻한 눈빛을 보냈다.


가끔 쥬쥬는 그런 나의 마음을 읽은 듯이 나를 가만 쳐다보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동네에서 쥬쥬를 제일 많이 보러 가는 애, 쥬쥬를 제일 자주 생각하는 애, 세상에서 쥬쥬를 가장 많이 사랑하는 애가 되었다.


쥬쥬는 멀리서 내가 “쥬쥬야” 부르면 논밭 사이에 겨우 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을 만큼 좁은 길로 쏜살같이 달려왔다.


아이들이 모두 신기해할 정도로 쥬쥬는 나를 잘 따랐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런 사랑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준다고 해서, 그 마음이 아주 진실한 것이라고 해서 늘 돌려받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 마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왜곡되고 오해를 사는 일은 얼마나 허다한가.


그런데 그 흰 개는

그저 온 마음 다해 사랑해주기만 하면,

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그 사랑을 돌려주었다.

아니 그보다 더 큰 사랑을 주었다.


어느 비 오던 날, 우산을 씌워 쥬쥬가 젖지 않도록 해 주고 나는 비를 쫄딱 맞고 있던 날


할머니는 다 늦어도 집에 오지 않는 초등학생 손녀를 찾아 쥬쥬네 집까지 오셨다.


“이 가시나! 왜 안 들어오나 했더니 개한테 충성을 하고 있네! 이 가시나!”


할머니는 나를 향해 소리치셨고

나는 집에 가 혼날 생각에 시무룩해져 있었다.


그때, 쥬쥬가 할머니를 향해 짖기 시작했다.

아주 큰 소리로 컹컹 짖어댔다.


쥬쥬가 짖는 걸 처음 본 아이들이 다 놀랐고

나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껄껄 웃으셨다.


“야, 참 용하다이. 그래도 지 좋다고 챙겨준 줄은 아나보네. 니 혼낸다고 내한테 막 뭐라고 하네. 니 동생 잘 뒀다이!”


할머니가 웃으셔서 나도 그냥 따라 웃었다.

쥬쥬는 나를 꾸짖으시는 할머니로부터 나름대로 날 지켜주려던 거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쥬쥬네 집에 가자 쥬쥬 아줌마가 내게 그랬다.


“니제? 쥬쥬 제일 좋아하던 게? 인제는 그만 온나. 쥬쥬 밭에서 농약 먹고 죽어뿟다.”


아직도 그 말이 진짜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아줌마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고, 이름도 모른다.

어렴풋이 그 집이 어디에 위치해있었는지만 기억난다.


그 시절 나는 쥬쥬가 정말 죽었을까 궁금해했다.

그리고 자주 집에서 울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말하면 정말 쥬쥬가 죽은 게 될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침대에 누워 분홍 벽지를 보며,

거기에 그려진 하트 그림을 보며 두 손 모아 기도한 기억이 난다.


“하나님, 쥬쥬는 착한 강아지예요. 죽었다면 그곳에서는 행복하게 해주셔야 해요.”


쥬쥬는 내가 사랑받고 싶었던 첫 대상이다.

그리고 사랑받기 위해 사랑을 아낌없이 주었던 대상이기도 하다.

쥬쥬가 내게 알려준 건 사랑의 감정만이 아니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해줘야 한다는 것. 그것도 아주 깊이, 진실되게, 세상의 가장 희고 정갈하고 깨끗한 마음들만 골라서 말이다.


이제 내 곁에는 쥬쥬도 할머니도 없다.

그저 내게 사랑을 가르쳐주고 변함없는 사랑을 주었던 그들이 다른 세계에서 평안하기를 매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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