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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린뒤맑음 Mar 21. 2021

신입사원, 취준생 시절의 취업스터디원들을 만나다

같은 곳을 향해 함께 달렸다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회사원들은 취준생 시절 함께 취업스터디하던 사람들과 계속 연락하고 만날까? 아무래도 취업스터디 자체가 비즈니스 목적으로 결성된 것이고 합격자 발표 이후 스터디원들의 합불여부에 따라 이후의 갈길도 갈리면서 인연도 옅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다.


그러나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각자의 운명이 나뉘었는데도 유난히 눈에 밟히는 스터디원들이 있다. 같은 길을 가던 시절 서로 크게 의지하며 동고동락했던 사람들,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별거 아니지만 또 별거인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 나와 같은 시험장에서 시험본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는 멀어질 때 멀어지더라도 정식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싶어진다.


나는 2019년과 2020년에 그런 좋은 분들과 의미있는 취업 스터디를 했었고, 작년 그 회사 필기 시험일 이후 처음으로 지난 주말에 2020년 스터디원들을 간신히 만났다.




우리의 목표였던 회사에 최합하여 신입사원이 되신 분도 있었고, 취준에 현타를 느껴 잠시 쉬고 계신 분도, 올해 재도전을 위해 다시 정진하시는 분도 계셨다. 그리고 목표회사를 접고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는 나까지. 총 4명이 모였다.


우리 스터디원 중 유일하게 목표회사에 합격하셔서 다니고 계시는 분을 보면서는 부러움이 많이 들었다. 내가 쌩퇴사를 하고 내 인생의 소중한 2년을 갈아넣을 정도로 가고 싶었던 그 회사에 다니시다니. 자유롭지만 불안정한 길을 가고 있는 난 그분이 털어놓는 안정성에서 비롯되는 그 회사의 고충마저도 부러웠다. 또 그분이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하셨는지 1년동안 봐왔기에 진심으로 박수쳐드릴 수 있었다. 내가 공부를 때려치고 싶어질 때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공부하시던 그 분 덕분에 나도 마음을 다잡고 1년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었다. 한번쯤은 직접 만나서 입사를 축하드리고 싶었는데 드디어 중요한 숙제를 끝낸 느낌이었다.


취준을 쉬고 계신 분을 보면서도 잘 살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한 휴식과 고민으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계시고 본인만의 길을 찾아가고 계시는 것 같았다. 긴 인생에서 쉬고 싶으면 쉬어가도 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2년의 고민과 공백 끝에 재취업했다. 그 2년이라는 시간은 의미 없이 흘려보낸 시간이 아닌, 지금 이 회사에 매일 출근하는 나만의 분명한 이유를 찾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긴 인생에서 굳이 회사에 소속되기 전부터 '내가 지원할 회사들이 내 공백기를 싫어하면 어쩌지' 하고 회사 눈치를 보며 살지 않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서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오롯이 자기 자신일 수 있는 시기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그 me time을 충분히 누리면 좋겠다. 어차피 언젠가 회사는 가게 되어 있고 회사가면 매일 회사 눈치 보게 될 테니까.


재도전하시는 분을 보면서는 회사원 된지 얼마나 됐다고 취준 시절의 열정을 잊고 있던 내가, '아 나도 저렇게 빡세게 살던 때도 있었지' 라고 상기할 수 있었다. 지금의 회사생활도 편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주말은 쉬니까. 매일같이 야근하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이날 만났던 스터디원중 제일 마음에 걸리고 눈에 밞히는 분이기도 했다. 장기 취준에 지쳐 자기 자신이 얼마나 멋지고 대단한 사람인지 모르는 것 같아서. 이분한테 경제학 그래프 정말 많이 배웠었는데. 스터디원중 제일 빨리 일어나서 정말 성실하게 공부하셨던 분인데. 스터디원들 배려도 많이 하시고 애교도 많으셨던 너무 좋은 분인데. 그 회사 합격여부와 상관없이 언제나 빛나고 있던 스스로를 언젠가는 꼭 알아봐주기를.




이분들과 스터디하던 2020년에는 우리 동기되서 같이 연수받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희망의 말들을 듣는 게 떨떠름했다. 멋모르고 준비하던 2019년에는 동기되자는 말이 설렜지만 최탈을 맛보고 재도전하던 2020년에는 사실 듣기 싫기까지 했다. 스터디원들이 다같이 합격한다는게 얼마나 비현실적인 말인지를 느껴서. 초등학생 커플의 "우리 커서 결혼하자"처럼 의미없는 말로 들려서. 이 중 누군가는 떨어질텐데 왜 그런 이루어지지 못할 말을 그렇게 해맑게 하는거야. 이렇게 내 현실적이면서 비뚤어진 마음으로는 그분들이 눈을 반짝이며 말씀하시는 이상적인 미래 이야기에 차마 호응하기가 힘들어서 적당히 하하 웃고 넘겼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해준 사람들이 총대를 메고 이번 모임을 추진해준 덕분에 작년 그 회사 필기시험 이후로 허망하게 뿔뿔이 흩어졌던 우리가 반가운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 우리는 스터디 동기였지. 입사 동기는 아니더라도 뭐 어때. 어쩌면 같은 회사 사람이 아니어서 더 친해질 지도 모르지.


2020년을 다시 돌이켜봐도 후회없을 만큼 나랑 같이 그 회사 취준에 몰입해줘서 고마워요. 어디에서 어떤 길을 가든, 우리의 반짝였던 2020년은 내가 오래오래 기억할게요 내 스터디 동기들.



배경사진: Image by StartupStockPhoto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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