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흐린뒤맑음 Jan 06. 2021

코로나 시국에도 마음은 오고 간다

한국에서 폴란드로, 또 폴란드에서 한국으로

2019년 말 한 친구가 결혼을 하면서 나에게 증인이 되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생각보다 이른 그들의 결혼 소식에 조금은 놀라웠고 축하하면서도 동시에 나를 증인으로 생각해줬다는 게 뜻밖이었고 감동이었다. 누군가는 증인 그거 그냥 구청에서 혼인신고서에 싸인하고 끝나는 거지 무슨 쓸데없는 의미부여냐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이벤트를 증명해 줄 단 한 명의 사람으로 나를 청한다는 건 그만큼 그 친구가 본인 인생에서 날 중요한 인물이라고 여기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친구 공무원 임용 때 보증인 하는 것보다 더 무게감 있었다. 결혼이라니, 이건 어느 한 쪽 맘대로 퇴사도 안 된다구!) 


누군가의 결혼에 증인이 된다는 뜻깊은 경험을 나에게 선물해 준 친구의 첫 결혼기념일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친구의 나라인 폴란드에 살면서 코로나 시국으로 한국에 오지 못하는 친구 커플이 원했던 소소한 한국 화장품, 녹차, 과자와 함께 한국을 그리워하는 친구를 위해 몸은 폴란드에 있어도 일년의 절반은 한국을 생각해달라고 만들어본 한-폴 교차달력, 그리고 편지를 담아 보냈다. 한국에서 국제우편을 보내는 것도 그러고 보니 처음이었다. 나에게 많은 처음을 선물해 준 특별한 친구.


폴란드로 부칠 EMS송장을 처음으로 작성해봤다. 뭔가 깔끔하고 체계적이다. 우리나라의 행정 시스템은 역시 갓.
녹차덕후인 친구를 위해 큰맘 먹고 구매한 오설록 녹차, 친구가 부탁한 올영 웨이크메이크 아이라이너, 친구 남편이 부탁한 땅콩샌드, 킨코스에서 제작한 한-폴 교차달력, 그리고 편지.
EMS는 발신자한테 세세하게 배송 진행상황까지 알려준다. 폴란드 우체부님의 배달상황을 알려주는 우리나라 우체국 알림 덕분에 친구한테 집 근처 우체국 가보라고 말해줄 수 있었다.


결혼기념일 선물로 보내고 싶었는데 미리 미리 준비 못한 탓에 새해선물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유실되지 않고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친구 주소가 생각보다 간결해서 이게 진짜 잘 도착할까? 싶었는데 진짜 갔다. 선물을 받아본 친구가 너무 좋아해서 나까지 행복했다.


직접 만나서 줬다면 물론 좋았겠지만 이렇게 선물을 꾹꾹 눌러담은 택배를 보내는 것 자체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나는 쉽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지만 친구는 그럴 수 없는 물건을 사서 박스에 예쁘게 포장하고, 손글씨로 EMS송장에 친구의 주소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고, 택배가 친구에게 언제쯤 도착할지 마치 내가 받을 택배처럼 기다리며 보냈던 그 모든 과정이, 즐겁고 감사했다. 이렇게 나는 내 마음을 보냈다.




근데 난 선물 교환을 생각한 게 아니라 결혼 1주년을 축하한다는 뜻으로 보낸 거였는데 이 친구는 나에게도 편지와 선물을 보내줬다. 축하받아야 할 날에도 뭔가를 나누려고 하는 그 따뜻한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내가 보냈던 EMS보다 더 빨리 도착했던 친구의 선물. 모든 택배는 다 반갑지만 괜히 더 반가운 물 건너온 택배. 강제적으로 해외에 못나가는 요즘 시국에는 더 그렇다.
얼마나 고민하며 고르고 준비했을지 그려진다. 친구의 목소리가 음성지원되는 편지도 감동이고 초콜릿도 너무 맛있었다.


이렇게 나는 생각지도 못한 마음을 받았다.




나에게 코로나 시기는 카카오톡, 스카이프, 줌, EMS의 활용으로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기존의 인연들을 더 단단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시기가 되고 있다. 소중한 사람들과 몸은 떨어져 있어도 기술의 발달로, 그리고 서로의 용기와 노력으로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