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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린뒤맑음 Aug 22. 2023

회사원 오래 오래 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회사 밖의 내 삶이 훨씬 소중해졌다

난 회사원을 오래 하고 싶었다.


조직에 소속되어 안정적으로 오래 일하고 싶어서 정년이 있는 공기업에도 한때 기웃거렸고,


나만의 소중한 커리어를 오래 이어나가고 싶어서 긴 시간 나에게 맞는 옷을 찾아 직무탐색을 했다. 사회초년생 때는 우리 팀 차장님 부장님을 보며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되는 날이 오기를 꿈꿨다.


그렇게 총 만 4년동안 3개의 회사를 다닌 나. 


허무하게도 이제는 회사를 놓고 싶어진다.


사회에서 1인분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30년을 썼는데, 회사원을 겨우 4년 해먹고 그만둘 궁리를 하다니.


이 회사가 싫은 것도 아니고,

이 직무가 싫은 것도 아닌데.


우리 회사 우리 팀은 여태 살면서 경험한 팀웍 중 최고의 궁합을 자랑하고 우리 팀장님은 얼마나 유능하며 훌륭한 리더인가.


또 일을 하면 할수록 난 마케팅을 좋아하는 게 더 분명하게 느껴지는데도.


내 이름 석자 박힌 재직증명서와 원징으로 금융기관에게도 믿을 수 있는 고객으로 대접받는데도.




회사원이라는 멋진 옷을 이제는 입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점차 고개를 드는건

회사원으로서의 내 역할에 쓰는 시간이 과도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임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결혼 전에는 야근 좀 해도, 위에서 압박을 받아도 크게 상관없었다.

난 일을 좋아하니까, 오래 일하고 싶고 더 발전하고 싶으니까.


그리고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 지금.

아이 계획을 앞두고 있는 나에게 야근은 이제 절대 안 될 말씀이고, 단축근무와 육아휴직으로 회사원으로서 내 역할도 잠시 뒤로 하고 싶다.


이제 나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가족과 나 자신이고, 그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으니까.


이렇게 나와 남편의 본격적인 가족계획으로 나는 워라밸에 대해 진지하게, 그리고 본질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마케팅일을 앞으로 5년 10년 20년 하면서 워라밸을 챙길 수가 있을까? 그것도 직급 높아지면서?


회사 입장에서는 마케팅은 돈 쓰는 조직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마케터를 고용하여 최대로 뽑아먹으려고 한다. 마케터 한 명이 많은 업무를 고퀄리티로 해내야 하는 이 구조로는 워라밸이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다.


지금 회사가 그나마 마케터로서 워라밸을 지킬 수 있는 회사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회사 다니면서 일이 몰리는 시기는 분명히 있다. 아이는 회사원으로서의 내 사정을 봐주지 않을거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참석해야 하는 회의도 많아지고, 회사에서 짊어지는 책임도 무거워지는데 이에 대한 투입은 마케터의 시간이다.





연차도 낮은 워라밸 겁나게 따지고 드네 라고 생각한다면 맞다.


마케팅을 하려면 가족과의 시간을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한다.


가족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마케팅을 포기해야 하고.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몸은 하나고. 워라밸은 정말 인생의 숙제이다. 마음 아프게도 결국 양자택일을 해야한다면 나의 선택은 가족이다.


백이면 백 주변 지인들 모두 출산후에도 커리어 이어나가라고 엄청나게 조언을 해주고 있는데, 그러니까 그 커리어가 나에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아실현하고, 사회인으로서 나 자신의 쓸모있음을 확인하며 자존감 얻고, 고정소득 벌어오는 그런  물론 너무 중요하지. 근데 그게 나에게는 눈뜨고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쏟을 정도로 중요한 건 아닌거다.


회사를 1순위로 사는 인생을 이제 그만하고 싶어진다. 아이가 있든 없든 말이다. 열정 바쳐가며 일할 의욕이 나지 않기도 하고 굳이 고생해가며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대단한 무엇도 없다. 꿈 많고 반짝이던 내가 어느새 세상살이 때가 뭍은 걸까. 일과 커리어에 대해서 덤덤하게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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