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looming the future
질문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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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상대가 사용한 단어에 대한 의미에서부터 그 내용의 논리에 이르기까지 상대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겹쳐지는 과정에서 일정한 ‘결핍’이 만들어지면서 우리는 질문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얼마나 질문하는가?
2010년 G20 정상회담 이후,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주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일화는 교육계는 물론, 한국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
혹자는 한국 사회의 압축성장은 효율성을 추구하였고, 효율성이 강조되는 사회 속에서 질문이 사라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말한다. 또한 고질적으로 지적되는 우리의 교육은 답을 가르쳤으며 답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두려움을 주었는데 이는 질문하지 못하는 우리를 만들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검색엔진을 두드린다. 검색엔진은 나의 질문보다 먼저 나의 궁금증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예상된 질문의 답’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그것이 검색엔진의 목표이고 추구하는 방향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답’을 수용하고 안심한다.
그 질문과 답은 내가 원하는 것이었을까?
이 과정에서 우리는 내가 질문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할 기회를 상실했다. 또한 그 정보가 내가 찾고자 하는 답인지 판단할 기회 역시 상실했다.
우리의 ‘질문하지 못함’은 검색의 기술 속에서 강화되고 있지는 않은가?
옥스퍼드 대학의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Victor Mayer Schonberger) 교수는 빅데이터 기반의 세상은 ‘결론’을 묻는 방식으로 이 사회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인과적 방식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아닌 높은 상관성을 바탕으로 한 ‘결론’이 높은 유용성을 바탕으로 이 세상에 대한 이해 방식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질문하지 않는’ 우리들에겐 너무나 익숙하고 편한 방식일지 모른다. 모든 결론은 인터넷 공간에 있으며 우리는 검색을 통하여 그 결론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이 시기에 찾고자 하는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류의 역할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호기심을 바탕으로 ‘왜’를 물으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설령 그 답이 정답이 아닐지라도).
질문은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상대가 사용한 단어에 대한 의미에서부터 그 내용의 논리에 이르기까지 상대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겹쳐지는 과정에서 일정한 ‘결핍’이 만들어지면서 우리는 질문을 가지게 된다.
어쩌면 우리에게 지금 부족한 것은 ‘결핍’이 아닐까?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지금 찾아야 하는 ‘결핍’은 무엇인가?
그 ‘결핍’을 찾을 때, 우리는 다시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