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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종의 연대 Jan 19. 2023

동물이 중요한 이유

Lori Gruen, <Ethics and Animals> 서문&1장


   한국에서 동물윤리 철학을 다룰 때 주로 언급되는 학자 겸 동물권 운동가는 대개 20세기에 활발하게 활동한 남성들이며, 부분적으로 인간중심주의를 표방하고 페미니즘 문제의식이 없다. 로리 그루엔(Lori Gruen)은 페미니스트 학자로서 동물윤리 철학에 접근할 뿐 아니라 인간중심주의적 동물윤리 철학에 대한 비판을 토대로 동물이 아닌 생물도 모두 포함하는 다종의 얽힘을 이론화하는 여성 학자이다. 따라서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생소하지만 현재 동물윤리 철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로리 그루엔의 이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루엔은 서문에서부터 다른 동물윤리 철학자들의 인간중심주의를 피하고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먼저 많은 글에서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인간이 동물에 포함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게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따라서 그루엔은 ‘비인간 동물’보다는 ‘다른 동물(other animals)’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둘째, 젠더 연구에서 젠더 중립적 대명사를 사용하는 운동이 있듯이 동물연구에서도 동물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영어 it이 아니라 he나 she, that이 아니라 who를 사용하겠다고 설명한다. 그루엔의 이와 같은 논의를 읽으며 한국의 동물권 운동가들도 인간 동물과 다른 동물을 구분하는 언어(예: O마리 대신 O명)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늘고 있는 사실이 생각났다. 이러한 종 중립적 언어 사용이 여러 문화권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1장 <동물이 중요한 이유>에서는 동물 윤리 철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예외주의(human exceptionalism)에 대한 비판을 다룬다. 서구 철학은 다른 동물을 착취하는 것에 대해 윤리적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인간만이 윤리를 실천하는 참된 주체라고 주장하면서 인간 동물과 다른 동물을 분리시키고자 한다. 인종과 성, 섹슈얼리티, 장애 등을 이용한 인간 사회 내부의 차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을 강조하면서도, 인간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동물적 본성에서 그리고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다른 동물로부터 거리를 두는 모순을 보이는데, 그루엔은 이를 인간예외주의라고 부른다. 그러나 최근의 많은 연구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보유하는 어떤 능력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 즉 인간은 다른 동물과 존재론적으로 구분될 수 없는 것이다. 그루엔은 인간만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다고 믿어진 대부분의 능력을 인간 동물과 다른 동물이 공유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연구를 소개하면서 인간예외주의를 비판하고 모든 생명체가 윤리적인 존재라고 주장한다.


   인간예외주의에는 두 가지 주장이 있다. 첫 번째 주장은 인간은 독특하고, X를 행하고 보유한 유일한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X는 어떤 행위나 능력이다. 그리고 두 번째 주장은 X를 행하거나 보유함으로써 인간은 그것을 하지 않거나 가지지 않는 존재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루엔은 이 X가 무엇인지, 정말 인간이 X의 유일한 존재인지 질문한다. 이에 더하여 그는 첫 번째 주장이 진실이라면, 그것이 윤리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다른 존재들보다 더 우월하고 더 보살핌과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게 만드는지 질문한다.

   먼저 인간에게만 있다고 믿어지는 능력 X는 여러 가지인데, (1) 사회 문제 해결 능력, 감정 표현, 전쟁, 문화, 쾌락을 위한 섹스, 유머 등이다. 그루엔은 다른 동물들 중 사회적 위계 에 따라 생활하기도 하고, 가까운 관계의 다른 동물들에게 관심을 가지거나 의지하며,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가까운 이의 죽음에 슬퍼하고, 평생에 걸친 유대 관계를 맺고, 위험에 빠진 대상을 돕고, PTSD에 걸리며, 생존을 위해 공격성을 보이고 전투를 하기도 하고, 즐거움과 장난을 표현하며, 웃고, 친밀한 섹스를 하는 사례를 제시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례를 담은 연구가 발표되면 인간예외주의자들은 인간 동물과 다른 동물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행동의 기저를 이루는 인지적 기술, 즉 인간에게만 있는 지능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르네 데카르트의 주장처럼 동물은 지적으로 사고하는 게 아니라 자극에 기계적으로 반응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만이 지능이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근대 서구 철학은 인간만이 도구와 언어를 사용하고 마음/감정이 존재하며 윤리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인간만이 인지적 능력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루엔은 다른 동물도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다양한 연구 사례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다른 동물도 도구를 사용한다. 제인 구달은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하여 더 많은 먹이를 사냥하는 것을 관찰했고, 크리스토퍼 보쉬(Christopher Boesch)는 침팬지가 견과류를 돌로 깬 후 나뭇가지로 알맹이를 파먹는 것을 보고하여 다른 동물이 여러 도구를 연속적으로 사용하여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도록 계획을 세우는 지적 능력이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또한 영장류 학자들은 인간처럼 다른 동물들도 집단 내에서 특정한 방식의 도구 사용을 전승하는 지역 문화가 있음을 발견했다. 질 프루에츠(Jill Pruetz)는 세네갈의 침팬지들이 부시베이비를 사냥하기 위해 다섯 단계를 거쳐 도구를 준비하고 사냥한다고 보고했고, 엄마 침팬지가 아기 침팬지에게 그 방법을 가르치는 것을 관찰했다. 옥스퍼드 대학의 연구자들은 까마귀들이 지역을 이동할 때 자신이 선호하는 도구를 물고 날아가는 것을 관찰하면서 문제를 미리 예상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도구를 준비하는 능력이 있음을 증명했다. 


   위의 설명에서 눈치챘겠지만, 다른 동물의 도구 사용 능력을 다양한 각도에서 증명해야만 했던 이유는 인간예외주의를 흔드는 하나의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인간이 독점하는 능력은 더 높은 차원이라는 주장이 계속되었고, 그러면 그 능력을 다른 동물도 공유한다는 사실을 또다시 증명하는 변증법적 과정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언어 사용에 대한 연구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치고 있다. 다른 동물의 언어 사용에 대한 연구는 1950년대에 시작되었다. 다른 동물은 인간과 구강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수어를 가르치는 실험을 통해 언어 능력을 증명했다. 많은 영장류 동물이 수어를 배우고 의사소통에 성공했고, 단지 기계적으로 배운 문장을 반복한 것이 아니라 문법과 의미를 이해하여 새로운 문장과 단어를 만들어 냈다. 예를 들어 침팬지 사라의 언어 사용에 관한 실험이 있다. 사라에게 ‘피오니에게 사과를 줘’라고 상징들을 배열하자 사라는 ‘사라에게 사과를 줘’라고 상징들을 바꿨다. 즉, 여러 단어를 서로 다른 배열로 나열했을 때 그 의미의 차이를 이해하고 자신이 의미하는 배열로 단어들을 재배치했다는 점에서 사라는 문법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그루엔은 인간예외주의를 뒤집는 수많은 연구를 소개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인간예외주의자들은 문장에 반응하여 언어를 단순히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스스로 만드는 능력은 인간에게만 유일하다고 주장하면서 역시나 사라의 사례를 인간예외주의의 허구성을 증명하는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 사바지-럼바흐(Sue Savage-Rumbaugh)는 이런 식으로 계속 기준을 높이는 방식을 비판하며, 이런 시도들은 인간의 기술과 동물의 기술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는 증거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예외주의를 성립시키기 위해서 인간과 다른 동물 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분리가 있다는 생각을 고수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발견을 통해서도 인간 동물과 다른 동물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에 대한 올바른 질문과 해답을 도출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이제 문제는 인간 동물이 다른 생물이 가지지 못한 복잡한 인지적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마크 베코프(Marc Bekoff)는 다른 동물들이 동정심 있고, 공감하며, 이타적이고 공정하며 도덕적인 행동을 하고, 정의, 공감, 용서, 신뢰, 호혜, 등등의 감각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루엔은 이는 한편 매우 당연한 사실일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행동과 인지가 다른 동물들의 그것과 진화론적으로 뿌리를 같이 하므로 인간과 다른 동물들 사이의 뚜렷한 행동과 인지 차이를 발견하는 것은 매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다른 동물 또한 이타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따라서 윤리적으로 대해져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다른 생물들에게서 어떤 능력이 발견되더라도 인간 동물이 가진 능력보다 열등하다고 주장하는 철학적 기반이 바뀌지 않는 한 인간예외주의는 깨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까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면서 다른 동물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특성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발견하지 못했다. 여기에서 그루엔은 논의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린다. 그는 “차이가 도덕적으로 중요한가?” 그리고 “누가 윤리적으로 고려될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라고 질문한다. 즉 인간 동물이 다른 생물보다 우월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인간만을 도덕적으로 고려될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여겨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루엔은 “우리가 도덕적으로 주목해야 하는 존재는 누구이며 어떻게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는가? 우리에게 도덕적 반응을 요구할 수 있는 존재는 누구이며 어떤 기준에서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한다. 그러한 존재는 어떤 생물종에 속하는 개인들이 아니다. 우리는 특정 개개인이 도덕적으로 대해져야 한다고 우리가 믿는 이유는 그가 인간종에 속하기 때문이 아니라, 가족, 친구를 필요로 하고,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며,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에 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고, 자신의 자유와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며, 감금되어 살아가야 한다면 지루하거나 외롭거나 화나거나 우울해지거나 죽을 수도 있고 매우 많은 방식으로 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동물을 윤리적 존재로 여기고 대해야 하는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루엔은 삶을 사는 것은 근본적인 가치이므로 살아있는 모든 존재의 삶을 해치는 것은 어떤 가치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삶을 영위하는 것에 큰 관심(interests)을 가지고, 정신적이고 육체적으로 안녕(well-being)한 삶을 추구하며, 상대적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 그루엔은 다른 동물이 지각있는 존재(sentient beings)로서 그들이 안녕한 상태를 누리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조건들이 갖춰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각있는 존재들의 기본적 관심을 부인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 감정적, 육체적 고통을 주고 해를 입히는 것이다. 이는 그 대상이 인간 동물이든 다른 동물이든 비윤리적 행동이다. 





참고문헌:

Lori Gruen, 2011, Ethics and Animals: An Introduc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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