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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주얼페이지 Nov 16. 2022

카드 생활자의 짝꿍 장소 찾기


피아노 레슨 중에 원장님과 얘기하다가 남편 회사에서 받은 온누리상품권에 관한 말이 나왔다. 마침 전날 책장 정리를 하다가 온갖 상품권을 발견하고 이걸 언제  쓰나 한숨 쉬었는데,  한숨이 무색해지게 온누리상품권을 활용할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책장에 꽂혀 있던 것들 중엔 온누리상품권과 주유상품권, 신세계 상품권, 문화상품권이 있었다. 나는 상품권 생활자가 아니라 카드 생활자다. 상품권을 받아도 기쁘지 않다. 신세계 상품권이나 문화상품권이 그나마 쓸모가 있는데, 계산할 때 카드를 내미는 게 거의 자동 반사라서 집에 올 때쯤이면 아차, 싶다. ‘아 맞다! 상품권 쓰러 간 거였는데! 또 카드 썼네. 아이고, 멍청아.’


시장은 거의 안 간다. 결혼 초에 아무것도 모르고 가서 바가지 쓰고, 떨이 물건 받아 오면서 몇 번 데인 후론 안 간다.   온누리상품권을 묵히는 이유다. 주유상품권 같은 경우도 기름이 값싼 주유소가 보이면 넣으니깐 일부러 특정 주유소에 찾아가서 (비록 리터당 10~50원 차이지만) 비싼 값 치러야 해서 전혀 반갑지 않다.  


아무튼 나의 상품권 활용은 이 정도에 그친다. 학원에서 상품권 얘기가 나온 까닭은 진미채의 값이다. “자주 사 먹지도 않는데, 마트 가서 한 봉지 샀더니 손바닥만큼 두 봉지 묶어서 15,000원이더라고요  너무 비싸요.”라고 말했더니, 원장님이 수산시장에 가면 한 봉지 가득 넣어서 2만 원도 안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아, 이번에 남편 회사에서 온누리상품권 나왔잖아요? 그거 가지고 가서 사세요.” “아… 저……그러면 되겠네요.”


진미채를 한 봉지 사서 냉동실에 가득 차는 것도 싫었고, 온누리상품권 쓰자고 수산시장 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온누리상품권은 왜 있는 건가. 나는 상품권을 쓰지 않는 건가. 남들은 아껴 쓴다는 상품권을 나는 왜 반기지 못하는가.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의 세상과 취향이 좁기 때문에 온누리상품권이 쓰이는 다른 세상을 만날 용기나 의지가 없기 때문에 원장님의 조언도 반갑지가 않은 것이다. 쓰고 보니 말이 거창하군. 말하자면 나는 인터넷 마트와 오프라인 마트가 보여주는 진열대에 적응해서 거칠다면 거칠고, 냄새난다면 냄새나고, 복잡하다면 복잡한 시장에 가기 싫다.


구입하기 좋은 물건으로 취향을 좁힌 결과가 아닐까. 실랑이나 눈치 볼 필요 없이, 정해진 용량과 매끈한 포장에 익숙해져서 마트 세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됐고, 상품권도 냄새나는 돈도 안 만지게 됐다.


지금 생각하니 마트 생활자로 살면 계절 음식에 대한 감각이 없어진다. 마트에서 팔기 좋은 물건들만 보게 되는데, 그게 생활이 되면 눈가리개 한 경주마처럼 되어버려서 마트 바깥세상의 물건을 못 본다. 마트 MD가 농, 어민 또는 농수축산물 회사와 대량 계약 후 농어민이 잘 키워서 마트로 보내준 음식을 제철음식이라고 먹는다. 자본주의의 맛이었을 뿐.


시가나 친정에 가면, 봄에는 봄나물, 여름에는 텃밭채소, 가을과 겨울에는 말린 채소들로 만든 반찬을 먹을 수 있다. 반면 우리 집은 사실상 일 년 내내 식단 변화가 거의 없다. 우리 집에선 아이들 반찬으로 조미김이 거의 항상 준비되어 있는데, 겨울에 친정에 가면 구운 김에 맛있는 간장을 찍어서 밥을 싸 먹을 수 있다. 여름이면 엄마는 각종 잎으로 쌈과 나물을 만들어주시는데, 나는 끽해야 호박나물 정도 해 먹는다.


봄에 시장에 간다면 쑥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겠지만 나는 마트에서 냉장고를 가득 채운 미나리만 봤다. 가을 시장에는 밤과 감이 곳곳에 쌓여 있었을 텐데, 마트에서 감 대신 종류별로 진열된 수입 포도를 봤을 뿐. 이번 가을 밖에 나갈 때마다 감과 밤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나무들을 봤지만, 정작 마트에서는 그것들을 본 기억이 없다.


쓰고 보니 마트에서 정해진 경로 따라, 보여주는 물건들로만 생활하는 나, 이래도 좋은 걸까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이번 주말엔 시장에 가야겠다. 상품권을 들고. 지금 나는 음식을 봐야겠다. 바가지 당해봤자 큰 손해 없을 경험 값이고, 경험이 쌓이면 고르는 안목도 성장하리라 믿는다. 이참에 손에서 돈 냄새도 맡고, 취향과 세계를 넓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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