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주얼페이지 Nov 21. 2022

감투 임자가 따로 있나

아무 생각 없이 감투 썼다가 후들후들 밤에 잠이 안 오는 얘기 하나.


6월에 유치원 선생님께 전화를 받았다. 교육청에서 내려온 공문에 따라 학부모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다들 참여를  꺼려해서 한 번만 더 부탁하자고 하시길래 알겠다고 승낙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학부모회 회장이 되었다.(그전에 받은 부탁으로 나는 다른 감투도 쓰고 있다.)


며칠 전에 학부모회 컨설팅에 갔다 오고 나서야 ‘학부모회’가 그 학부모회인 줄 알게 되었고, 나…… 부담감에 미치네……. 새 학기에 반 단위로 엄마, 아빠 모여서 임원 뽑고, 단톡방 만들어서 이런저런 대화와 소문이 시작된다는 뭔가 살아남기가 큰 임무처럼 느껴지는 정글 같은 곳. 그 학부모회인 줄 알았다면 나도 절대 하지 않았을 텐데, 알지도 못하고 감투 쓴 내가 잘못이다. 소심한 조무래기가…….ㅠㅠ 왜 그랬니.


다행히 올해는 학부모회 관련한 조례가 늦게 통과되고 도입 초기인 데다가 코로나 영향으로 학부모회의 활동은 없다시피 했다. (그래서 이게 무슨 일인지 몰랐지.) 하지만 내년 학부모회 활동을 위해 유치원 선생님이 마련한 컨설팅 자리에서 원장님과 선생님의 내년 학부모회에 대한 매우 큰 기대를 봤다. 두렵다. 내년에 안 하면 그만인데, 원장님은 내가 연임할 거라고 김칫국을 마시고 계신 데다가 내년에도 학부모 참여가 저조하여 어영부영 이 자리에 또 앉아 있게 될 것만 같아서 불안하고 두렵다. 아이를 다른 유치원으로 보내야 하나;;ㅠㅠ


무엇보다도 설령 내 아이가 졸업을 했더라도 내년 학부모회 총회가 조직되기 전까지는 내가 그 자리를 맡아야 한다는 게 큰 부담감이다. 원장님 구상에 따라 신입생 학부모가 모인 자리에서 발언할 일이 생길 것 같은데,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워후, 어쩌다가 내가 ㅠㅠ


교육청 담당자의 말을 내가 이해하기로는 학부모회는 이런 일을 한다. 학부모 의견을 적극 수렴해서 전달하고, 유치원과 학교 행정이나 학사업무에 대한 잘못된 소문을 바로 잡아주고, 학교 입장을 학부모들에 이해시킬 수 있도록 하는, 학부모와 학교 사이를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엄청난 내공이 있어야 하는 일 아닌가. 이런 일을 원활하게 하려면, 리더십은 물론이고 의사소통능력, 사교성 같은 능력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내게 없는 자질 목록이랑 같잖아. 으윽 숨 막힌다.


한편으로는 이번 기회에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는 거다, 별것 없다, 한번 도전해보자, 생각도 해봤으나, 최근 품앗이 활동을 하면서 부족한 사회성을 확인했던 일도 생각났다. 아휴, 어렵다. 생긴 대로 살지 싶다가도 그런 자리 태어날 때부터 맡아두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그냥 한번 해보지 뭐 싶기도 하다. 애들한테 도전해보라고 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책 읽고 글로만 변화 의지 새기지 말고, 행동으로 실천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기도 하고. 정말 모르겠다.


일단, 그래 내년 일은 내년의 나에게 맡기고, 지금은 입학식 혹은 가입학식 때 떨지 않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게 말할 수 있는 연습이나 해야겠다.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부터 쳐내자.


매거진의 이전글 카드 생활자의 짝꿍 장소 찾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