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 못했습니다. 그런데 "극복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미디어에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역경을 극복했다. 그들은 매일같이 내게 속삭였다.
"힘든 상황에서도 노력하면 이겨낼 수 있어요."
그 말은 이기지 못한 나를 항상 멍들게 했다. 왜 나는 극복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비교적 괜찮은 조건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아파하고, 여전히 무기력하고 여전히 나에게 확신이 없을까. 내 존재의 가치는 뭘까.
회의감이 밀려올 때마다 이렇게 글을 쓰는 가치가 없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내가 뭐라고 내 이야기를 하는 걸까.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원한다고 생각했다. 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이 하는 말보다는 비즈니스적으로,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우월한 위치에서 어떻게 하면 괜찮아질 수 있을지 말하는 사람의 말을 믿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불행한 과거들은 그들의 노력과 성공을 돋보이게 하는 잠시의 시련이기 때문에 말하는 게 약점이 되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내가 하는 내 감정과 폭력적인 아버지 이야기는 내 약점으로 보일 게 뻔해서, 그래서 나도 성공한 다음에야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견디지 못했다.
그렇지만 참을 수 없었다.
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내 삶이 정말로 무의미해질 것 같아서,
잠시동안이라도 살아있으려면 글을 써야 했다.
그러다가 내게 고맙다고 하는 사람의 댓글을 읽었다. 그 댓글을 잊을 수가 없어서 오래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극복하지 못했으면서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닐까.
예전에 나는 "나만 그렇다"라고 생각했고 나아가 "나같이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겠지"까지 생각하게 되었지만, 이렇게 대부분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정말로 처음이었다.
어쩌면 미디어에서 자신감 있게 말하는 그 사람들도 나와 같을 수도 있지 않을까.
친구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지 말지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피해자성"에 대해서 생각했었다.
감정적으로 표현하면 동정받을 게 뻔하고, 덤덤하게 이야기하니 별 거 아니라고 제멋대로 해석하기도 해서 어떻게 전달할지 정말 난감했다. 실제로 "별 거 아닌 것" 취급을 받으니 고통스러운 나 자신이 바보 같았고, "동정"받으니 자존심 상했고, 나아가 "약점"이라도 잡은 것처럼 희롱거리로 삼으니 지쳐버렸다.
어쩌면 TV에 나오는 소위 "극복한 사람"들은 그래서 일부러 태연한 척했을지도 모른다. 별 거 아닌 건 아니지만, 현재의 내 약점이 아니라 "극복했다"라고 지난 것처럼 말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들도 나와 같다면, 최대한 덤덤한 척을 할 뿐이라면 우리는 우리에게 너무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
TV에서 비슷한 역경을 딛고 오히려 성장했다고 나는 더 이상 가해자가 무섭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사실은 괜찮지 않은 거라면, 혹은 그 사람도 이제 벗어나야만 한다는 사회적 압박을 받고 있었다면, 그리고 그게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저 사람은 괜찮아졌다는데 너도 이겨내야 한다는 짐이 되고 있다면...
같은 일을 겪은 사람끼리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 있는 것 아닐까.
어쩌면 최대한 덤덤한 말을 고르고 골라 쓴 이 글도 누군가에게는 압력처럼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바로 말하고 싶다.
알고 있겠지만, 나는 아직도 힘들어요.
나는 아직도 아버지 생각을 해요.
아직도 무서워요.
나는 아버지를 피해서 집을 나온 지 꽤 됐는데도 아직도 괜찮지 않아요.
그리고 아마도 집을 나왔다고, 경제적으로 성공하게 된다 해도, 아버지가 돌아가신다고 해도
완전히 괜찮아지진 않을 것 같아요.
회복은 시간 따라 되는 게 아니라 제가 노력해야 겨우 될 것 같고, 그래도 흉터는 남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