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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초 May 19. 2023

의외로 정신과 의사가 말해주지 않는 것

#정신과후기 #불안회피 #에프람정 #정신과

정신과에 방문한 지 3회 차 의사 선생님이랑 엄청 잘 맞는 느낌이다. 처음 처방해 주신 약물도 부작용 없이 잘 맞아서 10mg으로 증량했고 약도 한 달치를 처방받았다. 일이 모두 순조롭게 풀려가는 느낌이라 조금 불안하기도 하다. 이 세상에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라는 불안감이 조금 있다. 이런 생각도 병적인 불안 때문일지도 모른다. 


의사 선생님에 대한 불신과 의심은 치료를 느리게만 할 뿐, 플라세보 효과라도 받으려면 의사 선생님을 최대한 믿어봐야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상담하면서 느낀 의사 선생님에 대해 정리해 보기로 했다.


 내가 다니는 의사 선생님이 생각보다 확고하게 말씀하시고, 기준이 딱딱 있으신 분이었다. 내게 숨기는 것은 거의 없는 듯했지만 일부러 말하지 않는 것들은 몇 가지 있었다.


이를테면, 

 나 : "아버지가 가정폭력을 해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X 의사 선생님 : "아버지가 정말 힘들게 하는 사람이었군요. " <- 가치판단(평가)
 O 의사 선생님 : "가족 문제로 마음이 힘들었던 거군요.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불안이 높아요."<- 공감 (평가 x, 케이스공유) 

이렇게 "내가 옳다" 던가 적극적으로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너무 그러셨겠어요"같은 과장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공감하면 할수록 내가 일들을 더 심각하게 보거나, 잘못된 믿음을 갖는 걸 경계하는 것 같았다. 그 화법은 나한테는 잘 맞아서 대화하면 할수록 누가 잘못했다기보단 "내 감정"에 집중할 수 있었고, 털어놓을수록 감정적으로 북돋아지는 게 아닌 침착해졌다.


그다음으로 내 "증상"과 "수치"에 대해서는 얘기해 주시지만 정확한 병명에 대해 말씀해주시진 않았다. 첫날 받은 검사로 내 불안 수치가 높은 반면 자극추구도가 낮아서 상쇄가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설명해 주셨지만 구체적으로 "불안증", "불안장애" 등 병명으로 설명하시진 않았다. 주어진 수치등을 토대로 비슷한 증상을 직접 찾아보면서 대충 이 중 하나겠지라고 나도 짐작하고는 있지만 확실치는 않아서 글 쓸 때도 구체적으로 병명을 밝히기 조심스럽다. 


포털사이트 검색 결과 다른 의사들도 환자에게 진단명을 밝히는 걸 피한다고 한다. 정확한 병명을 알게 되면 그 병의 증상에 맞춰 자신을 꿰어 맞추는 식으로 해석하게 될 수도 있고, 약물의 반응을 보고 다른 진단을 받게 될 수도 있거나, 하나의 병명으로 진단하기에는 복합적인 경우가 있다고 한다. 


적절한 약을 먹어서 증상을 다스릴 수만 있다면, 사실 병명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나도 굳이 의사 선생님한테 병명을 묻진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처방받는 약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시면서 약품명을 밝히진 않았다. 처음 에프람정을 처방받게 되었을 때 이 약은 보통 우울증 약으로 쓰이지만, 나한테는 불안정도를 일상과 긴장상태의 중간으로 맞춰주는 데 쓰일 거라고 했다. 하루에 한 번 저녁에 복용하면 되고 졸리거나 멍해지는 부작용은 거의 없고 간혹 위장통이 있을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셨다. 그렇지만 이 약의 명칭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또, 정신과에서는 약국이 아닌 정신과 내부에서 처방을 받기 때문에 약봉투에 약품명이 쓰여있지도 않았다. 저녁 14정 정도밖에 기재되지 않은 흰 봉투에 알약만 담겨 나온다. 

약학정보원 에프람정 검색 결과

그런데 어떻게 이 약물에 대해 알게 되었냐 하면, 솔직히 궁금해서 약학정보원에 검색해 봤다. 식별로고와 색깔, 모양 등의 정보로 쉽게 해당 약물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약학정보원에 나와있는 정보도 

 "에프람정은 SSRI계 약물로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억제하여 뇌내 세로토닌 수치를 올린다." 같은 의료적인 용어 투성이에 애매하고 모호한 정도라 이걸 안다고 해도 내 치료에 큰 부작용은 없을 것 같다.


조금 신기한 점은 이전에 자가 치료하겠다고 비슷한 SSRI계 천연 영양제인 "세인트존스워트"를 복용했을 때는 비슷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역시 의사를 통한 처방이 제일 확실한 것 같다.


이렇게 치료를 위해 숨긴 것 말고, 의외로 대답해 주셨던 내용을 공유하고 싶다.

궁금한 것 없냐고 물어보셔서 조금 성급한 질문이긴 하지만 언제까지 약을 먹어야 괜찮아질지 물어봤다. 주변에서 장기 복용하는 사람들을 자주 봐서 

"1년 정도는 걸리겠죠?"

하고 질문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의 답은 뜻밖이었다. 

흔쾌히 

 "6개월 정도면 될 것 같아요."

라고 하셨다. 생각보다 빠르게 호전이 가능한 것 같아서 기대가 되는 한편 조금은 섭섭한 것도 같다.

나아지면 좋긴 좋을 텐데, 그렇게 금방 나아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못해서 진작 병원을 갈 걸 하는 후회를 쪼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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