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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초 May 15. 2023

정신과약 하나가 바꿀 수 있는 것들

정신과 약 복용 2주 차 후기 #에프람정 #불안과회피증세 

"불안과 회피"가 높은 상태로 정신과에서 진단받은 지 2주가 지났다. 나는 2주 치 약을 처방받았고, 정신과를 재방문하기에 앞서 약물을 먹어보면서 바뀐 것들에 대해 스스로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확실한 것은 모든 게 급진적으로 바뀌진 않는다는 것이다. 비타민주사나 항생제주사같이 주사 한 번만에 몸이 좋아지거나, 체력이 증가하거나 하는 변화들을 나 역시 조금은 기대했다. 


 내 증상은 불안하고 초조하면서도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할 정도의 무력감에 빠져있는 것과 많은 일들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각성상태에 있는 것이었다. 각성과 비각성 상태의 차이가 심한 편이고 중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의사 선생님이 처방한 약물은 둘 사이의 차이를 완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하루에 한 알, 저녁에 5mg"

 정신과 약은 반드시 의사의 상담아래 처방받아 복용해야 하고 똑같은 약물을 복용하더라도 사람별로 반응은 천차만별일 수 있지만 참고 삼아 현재 처방받은 약물에 대해서도 밝혀본다.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약물은 "에프람정"이고 하루에 5mg씩 14일 복용했다. 복용법은 간단했다. 저녁에 한 알을 복용할 것이었다. 강한 약물이 아닌, 비교적 약한 약물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정신과약물에 대해 두려움과 거부감을 조금 가지고 있어서 되물었다. 


 "혹시 졸리거나, 멍해지고 두뇌회전이 둔해지거나 하진 않을까요?"


라고 물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고, 부작용도 많지 않으며 드물게 위장에 문제가 올 수 있을 뿐이라는 확답을 들었다. 그렇게 부작용을 두려워하면서도 나는 강한 약물을 먹는 것처럼 효과에 있어서 큰 기대를 했다. 작은 약물 하나에 너무 많은 꿈을 밀어 넣은 셈이다.


 그 기대 때문에 일어난 플라시보 효과*(환자의 심리적 요인 덕분에 효과 없는 위약을 복용했음에도 증상이 호전되는 현상)였을까? 약을 처음 복용한 3일간 나는 약간의 각성상태를 느꼈다. 늘어지지 않고 약간 긴장해 있다고 느꼈고, 몸의 통제력이 조금 증가한 것 같았다. 별 것 아닌 일상에서 제어할 수 있는 점이 첫 주간 늘어난 것 같았다. 


 나는 새로운 환경이 주어질 때마다 극도의 긴장에 빠지며 식욕이 감소했었는데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나은 현상이 일어났다. 평소에 필요이상으로 많이 먹곤 했는데 추가적인 간식을 먹지 않게 된 것이다.  식욕이 감소한 게 아니라, 가짜 허기짐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배가 불러도 입이 심심한 일들이 자주 있어서 간식을 계속 섭취했는데 간식을 권유해도 내키지 않아 거절하게 되었다. 

 

 그런 기대감 섞인 변화도 첫 주의 마지막 고비 앞에서는 힘없이 꺾인 것처럼 느껴졌다. 약을 먹기 시작한 후 첫 번째 주말 아침 불안 섞인 무기력감이 몸을 덮쳤다. 그래도 하루 종일이 아닌, 멍하니 쇼츠나 의미 없는 SNS로 불안감을 회피한 지 3시간 만에 일상에 돌아갈 수 있어서 이제 괜찮아졌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온몸이 묶인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는 불안, 우울감, 초조함에 빠졌고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괜찮아졌다고 방심한 사이에 기습을 당한 것 같았다. 평소보다 기분이 좋다가 추락하는 건 그 이전에도 계속 반복되었던 유형이었다. 이 유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약물보다는 결국은 나 자신이 강해지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았고, 그렇게 되기까지 너무 멀게 느껴졌다.


 그 후에는 완전히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약간의 긴장도 "약을 먹는다"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긴장이었을 뿐 약물자체의 효능은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심리적 문제사항도 "정신적 질병"보다는 그저 고질적인 습관이나 기질처럼 개인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문제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정신과 약물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이 커지던 중 어머니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너 약 먹게 된 이후로 밝아진 것 같아."

 어머니는 내가 약 먹은 지 2주째부터는 말하는 어조나 분위기 자체가 많이 밝아졌다고 말했다. 평소라면 예민하게 반응했을 문제에도 이전처럼 갑자기 감정적으로 고조되지 않고 한 박자 천천히 반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이전의 내가 어두웠는지도 몰랐는데 엄마는 약 먹기 전의 내가 훨씬 어두웠다고, 우울해했다고 말했다.


 솔직히 믿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어머니가 한 말이었다. 엄마는 지금까지 내 우울과 불안을 쭉 지켜본 사람이었다. 내 감정이 어떤지, 가정폭력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 내 상황이 어떤지 배경을 전부 아는 사람이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은 생각보다 큰 의미로 다가왔다.


 더욱이, 엄마는 항상 정신과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5년 전부터 나는 정신과에 가고 싶다고 꾸준히 말했었지만 엄마는 나를 말렸다. 자신도 정신과에 갔었지만 잠 오는 약물만 받아 잠만 잘 수 있었을 뿐 멍해지고, 둔해지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신과에 가는 것도 큰 변화를 만들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래도 내가 힘들어한다고 알고는 있었고, 정신과에 보내고 싶어 했지만 경제권을 쥔 아버지한테 말하자마자 "왜 그런데를 보내냐. 얘를 정신병자로 만들 셈이냐."며 노발대발해서 못 보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버지를 피해 집을 나온 후에도 정신과 자체에 대한 회의는 여전했다. 처음 가고 싶다고 한 지 3년이나 지나 겨우 방문한 정신과에서 살짝 안 맞는 의사를 만난 내게 "정신과는 다 그렇다"라고 위로했던 엄마였다.


 그러던 엄마가 처음으로 정신과에 대해 긍정했다. 

"너는 지금 3.1점이야"

엄마는 내가 3.1점이라고 말했다. 1~5점까지 5점이 될수록 긍정적인 척도로 하자면, 이전의 나는 3 정도였고, 약을 먹은 지금은 3.1 정도라고 했다. 2주 치 약으로 0.1씩 모아서 언제쯤 5점이 될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0.1씩 나아지고 있다.


 고작 약 한 알로 인생이 빨리 바뀌진 않는다. 갑자기 세상이 밝아 보이거나 덜 우울해지지도 않다.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불안해지면 회피하고, 회피하다 보니 무기력해진다. 그 습관적인 행동 유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과 환경적인 변화가 필요하며 꾸준한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항상 변화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온다. 의식적, 기질적 사고는 바꿀 수 없더라도 마음적 안정에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사고가 크게 바뀌진 않기에 본인은 의식하지 못해도 감정적 조율이 조금 되는 느낌이다. 


 그러니 본인이 약물의 효과를 인식하기 힘들다면, 주변인에게 물어보는 편이 좀 더 확실하다고 느꼈다. 계속 주변인이나 의사를 통해 변화에 대해 확인해 가면서, 무엇보다 약물과 개인적 노력을 병행해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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