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감정회복 #불안증
지난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아버지를 "무섭다"라고 인정했다.
이상한 말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분노나 체념처럼 생각해 왔지만 사실은 무서웠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때리는 걸 보면, 그게 가족이든 아니든 무서운 게 당연한 건데 나는 지금까지 그래도 내가 아버지의 잘못된 행동을 보면서 비판하고 비난하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아버지의 과거는 어떤지, 현재의 상황은 어떤지 생각하면서 그 사람을 옹호하진 않지만 왜 그런 파괴적인 성향을 갖게 되었는지 인지했고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라 생각했고, 그것으로 내가 조금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크게 마음 아파하지 않고,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자연스럽지 않은 거라고 들었다. 그제야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폭력을 목격할 당시) 어린아이가 그런 걸 보고 괜찮을 리가 없어요. 아무 감정이 안 든다면 온초님 마음이 자연스럽지 않은 거예요"
그렇게 말해준 것은 상담사님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모 센터에서 무료로 상담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상담을 받으러 가기 전 정신과 의사 선생님에게 여쭤봤는데 일회성 상담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가능하다면 장기 상담을 받으면 좋겠다고 들은 터라 상담을 받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상담 전 문진표를 작성해야 했는데, 나는 처방받은 약물과 가족과의 관계, 특히 지금까지 내 삶을 흔드는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솔직히 작성했다. 그래서 그런지 일회성 상담임에도 생각보다 많은 내용을 다뤄볼 수 있었다.
상담선생님은 정신과 선생님과 비슷한 듯 달랐다. 의사 선생님이 내 현실과 어쩌면 미래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과 반대로 상담선생님은 처음으로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에 대해 다시 되짚어보게 했다
단순히 누구의 탓을 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과 근원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경제적인 이유로 상담을 지속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자, 상담선생님은 앞으로도 찾아보면 좋겠다며 심리적 용어를 기반으로 차근히 내 판단과정을 풀어주셨다.
먼저, 나는 새로운 상황이 닥칠 때 심하게 긴장을 하고, 그 일이 지나면 긴장이 얕아져 오히려 무기력해졌다. 정신과에서는 그 모든 게 불안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렸을 때 가정폭력을 목격하며 자란 경험과 무관하지 않은 불안감이 기저에 깔려있다가 불쑥 수면 위로 올라오면 긴장하게 되고, 지속적으로 긴장한 상태로 있을 수는 없기에 긴장이 풀리는 순간 무기력해진다고 했다.
상담 선생님의 말도 비슷했다. 과거 가정폭력 같은 극단적인 일들을 겪어온 아이들은 회피와 불안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만 그 작동 기제에 대한 설명은 조금 더 감정적으로 상세했다. 큰 사건을 겪은 만큼 큰 감정의 폭이 나타나야 하는데 나 같은 아이는 그걸 꾹 참는다고 했다. 정확히는 강렬한 감정에 매몰되면 그 상황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그걸 불안으로 바꾼다고 했다. 아마 바꾸기 전 내 감정 중 하나는 공포였던 것 같다.
"공포"와 달리 "불안"은 대응하기 비교적 쉽다. 적절하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감정이다. 불안이 완전히 나쁜 게 아니라고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상담사님은 말했다. 그러나 불안해서 행동하더라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 상황들이 쌓이고 쌓였다. 화내고 욕설도 해보고 천하의 후레자식인 "척"도 해봤지만 빠져나갈 구석이 없었다. 불안만 쌓이고 쌓여서 어느 순간 팍 놓아버린다고 했다.
그리고 그 팍 놓는 순간이 짧아지거나 불안을 대응하기 힘들어하는 이유들에 대해 "자아 존중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눈을 감고 한 사람만 떠올려보세요.
당신이 힘들 때 떠올리면 의지가 되는 사람이 있나요?"
솔직히 이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한 명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없는 것 같아요"라는 대답에 뜻밖에도 상담사님은 그 사람이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고 존중하고 스스로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이 불안을 진정시켜 줄 것이라고 했다. 모호한 말에 나는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고 되물었다.
선생님은 내 눈을 정면으로 보면서, 스스로의 감정을 느끼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계속 부정하고 없는 것처럼 체념하고도 힘들어하는 그 감정들을 수용하고 존중하는 것이 결국 나에 대한 확신이 된다고 했다. 그 확신을 위해서 혼자서라도 감정을 표현하라고 했다. 화나면 종이를 구기거나 슬프면 울라고 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감정을 모른 체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그렇지 않다고, 적어도 내게는 그게 힘이 될 거라고 했다. 부족한 정신 에너지는 내 감정을 온전히 느끼는 것에서 올 거라고 했다.
그래서 밤에 아버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다. 체념하고 무시하는 것 외에, 잊어버리려고 한 그 당시에 내가 느끼거나 느꼈어야 할 감정은 어떤 것들인지 떠올려봤다. 그리고 한 감정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모른 척하려고 강한 척한 내가 사실 느꼈던 감정은 거의 "공포"였다. "내가 무서워서 이렇게 행동했구나."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과거의 내 행동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무서워서 강한척하면서도 본격적으로 행동하진 못했구나. 그래서 숨을 죽였구나. 그게 내 정당성이 되어 확신이 된다는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온 세상이 회색처럼 느껴질 때가 많이 있었다. 내가 가장 의미가 없는 느낌이 들었다. 불쾌한 감정, 사회 통념적으로 인정받지 못할 것 같은 감정들을 꾹꾹 눌러다 종량제에 담아 버려야 할 것 같았다. 울면 안 돼. 웃으면 안 돼. 아 이런 감정은 느끼면 안 됐는데란 감정들. 감정자체를 부인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지금은 그런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그러면 살아있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메인사진: Unsplash의Joseph Fra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