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툴거려서 미안해요 #낯선 환경 #엄마생각
낯설고 새롭고 두려운 상황에 놓일 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의지하는 편이다. 부모 중 한쪽이랑 사이가 안 좋기 때문인지 엄마와 나의 유대관계는 특별히 깊다. 그렇지만 나는 내게 엄마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만 자주 생각하고 엄마에게 내 존재가 얼마나 큰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항상 "나"의 존재, 나의 꿈, 나의 욕망을 보고엄마가 보는 내 욕망, 내 존재, 나에 대한 생각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힘겨운 일들이 닥칠 때마다 함께 그것을 견뎌주는 건, 엄마 안의 내 존재, 엄마가 생각해 주는 나였다.
나는 지금 원래 있던 곳을 한참 떠나서 낯선 곳에 와 있다.
원하는 공부를 하는데 지원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기숙사에 와 있다.
솔직히 기숙사는 별로 좋진 않았다.
나는 대학시절에도 꾸준히 집으로 통학을 하고, 한 번도 기숙사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사실 자취도 도망치듯 나오면서 잠깐 한 게 전부라서 정말 낯선 타인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심지어 화장실까지 공유한 적은 처음이었다. 한층 이동해야 나오는 공동화장실에서 앞으로 함께 계속 얼굴을 마주해야 할 교육생들과 세수하고, 이 닦고, 나아가 샤워하고, 대소변을 가리는 곳까지 공유한다. 위장이 약한 사람이라면 배를 부여잡고 뛰어가서 민망한 소리마저 공유해야 하는 곳이다.
방으로 돌아와도 룸메이트와 함께 있기 때문에 마음 편히 방귀 뀌기도 쉽지 않다. 항상 개별 방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피가 섞이지 않은 타인이라 그런지 별 게 다 민망하다. 또한, 씻으러 나가는 시간이나 자는 시간도 제각기 달라서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사람이 오고 가는 현관문 소리에 민감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방일 때는 안팎으로 오가는 것이지만 도어록을 열고 들어오는 느낌은 또 사뭇 다른 것 같다.
문을 아예 개방하고 잠그지 않고 지내는 사람도 있다지만, 나는 아무리 기숙사여도 그렇게는 안될 것 같다.
그런 환경에서 지내다 보니 이래저래 힘들어서 엄마한테 툴툴거렸다. 바깥의 방 시세가 너무 비싸다고, 결국은 기숙 산데 기숙사가 너무 별로란 이야기를 조금 했더니 엄마가 생각지 못하게 너무 마음 아파하셨다.
뭐가 그렇게 속상하냐고 여쭤보니, 내가 돈 때문에 그런 고민하는 게 싫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옛날에 처음 집 나와서 반지하방에 있을 때도 내가 불편하다고 한 게 너무 속상했다고 하셨다.
여전히 철없는 나는 그저 내가 있는 환경에 대한 불만을 나누는 게 엄마에겐 책망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를 탓한 적은 없었고, 그저 어리광 부리고 싶었을 뿐인데 이 모든 상황을 엄마는 본인이 떠맡아야 하는 것으로 책임감을 갖고 계셨다.
엄마 자신이 자랐던 삶에 비하면 훨씬 나은 환경인데 불만만 많다고 핀잔줄 만도 한데 그러기보다는 속에 쌓아두기로 한 것이다.
이전에 *구술사(인터뷰를 통해 집단이 아닌 개인의 삶의 관점에서 역사적인 자료를 수집하는 관점 혹은 수단) 관련 수업을 듣다가 엄마의 생에 대해 인터뷰했었다. 나는 80년대를 살아간 여성으로서 느끼는 차별점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질문을 짰는데 사실 들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가난"이었다. 그리고 그 가난에 힘겨워하면서도 묵묵히 견뎌온 삶이 있었다.
엄마는 대학시절 기숙사에서 지냈다. 무려 4인 기숙사였고, 화장실이 아예 건물 밖에 있었다고 했다. 씻을 때마다 외부로 나가서 씻고 들어와야 했고 세탁기도 없어서 손빨래를 했다고 했다. 4인이지만 다 학년이 달라붙어 지낼만한 느낌은 또 아니었고 밖에서 식사할 여력도 없어서 기숙사비에 포함되어 있는 식사로 해결했고, 심지어 제일 막내일 때는 4인의 식사를 기숙사로 나르기까지 했다고 한다. 집에서 먼 거리에 있어서 교통비 때문이라도 집에 자주 가지 못하는 그런 곳이었다. 더욱이 집에 가도 일손을 도와야 했다.
그런 상황의 연속에도 엄마는 할 수 있는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았다. 눈앞에 해야 할 일들이 많아 새로운 삶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빠집을 나온 이후에 하고 싶은 걸 생각해 보라고 해도 크게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가장 큰 짐이었던 아빠와 멀어진 이후에는 누군가를 위해 하지 않는, 엄마만의 삶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여전히 자기 자신만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이 보고 싶지만 한참 커버린 자식들을 어떻게든 책임지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엄마에겐 해야 할 일이 많아 보인다. 자기 자신만의 꿈 대신 나와 내 꿈을 응원하기로 선택했다면, 나도 나 자신뿐만 아니라 엄마의 꿈에 응답해주고 싶다.
나는 내가 가진 능력보다 항상 더 좋은 삶을 탐하고 싶어 하고, 질투하고, 시기하고,
지금 환경에 불만족하고, 징징거리지만 이 욕망을 통해 더 나은 곳에 있고 싶다는 게 내 목표라면,
그런 내 곁에서 내 모든 결정들에 함께 있고 싶다는 엄마의 마음까지 업고 한 번 끝까지 가보고 싶다.
이 새로운 환경에 질 것 같을 때마다 그 생각만 하기로 했다.
내가 엄마의 유일한 꿈이라면, 내 꿈의 목표지점에도 엄마가 있는 걸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