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는 숨을 곳이 없는 예술이다. 몸에 달라붙는 타이즈, 토르소만 가리는 의상, 머리카락마저 한 올도 빈틈없이 틀어 올려 번(bun)으로 묶는 발레. 상대에게 모든 것을 드러낸다는 각오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프로 발레 무용수의 타이즈가 희화화가 아닌 존경의 대상이어야 하는 까닭.
모든 것을 드러낸다는 것은 즉, 모든 것을 평가받을 각오를 했다는 의미.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평가를 받을만한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
발레 슈프림 공연장 백스테이지의 바. 발레에서 바는 알파같은 존재. 무단도용 안됩니다. By Sujiney
그 수준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매일 발레 바(barre)를 잡고, 쁠리에를 누르며 바닥을 느끼고 이용하는 힘을 기르고, 자기의 몸을 이해하고 부릴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발레를 성인이 되어 배운다는 것. 어찌 보면 어불성설이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남극점에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정을 떠나는 일과 같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 취미 발레엔 그만의 가치가 있...다라고 쓰려고 하다, 멈칫했다.
가치가 과연...있을까?
높은 수준을 성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으며,
그 여정은 지난하고 지루하다는 것도,
육체적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모두 수반함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도 성인이 취미로 발레를 배운다는 것의의미.
여기까지 쓰고 약 10분 간 골똘히 숙고해 본 결과,
결론은 이렇다.
가치, 있다.
각자 발레를 배우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직업으로서의 발레가 아닌 취미로서의 발레에도 가치는 있다. 예술의 경지는 아니더라도,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의식하며 그에 가까이 가기 위해 수양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아름다움이다.
역시 발레 슈프림 2024의 공연 중. 이 사진을 찍을 수 있어 행복했다. 프리드만 포겔 무용수. 무단도용 안돼요. By Sujiney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험난한 여정에도 꽃은 피고 단풍은 질 테니까. 절망의 골짜기가 깊어지더라도 꾸준함을 무기 삼아 가보는 거다. 무용수들의 무대를 보며 절대적 아름다움을 흡수하면서.
재미있는 건, 프로이건 취미이건 공평하게 시작은 클래스라는 것. 발레의 역사를 새로 쓴 마린스키 발레단 첫 아시아인 수석 무용수, 김기민 발레리노도 인터뷰에서 말했다. 바워크가 제일 중요하다고. 자기는 선생님께 바워크를 너무 많이 해서 혼이 난다고.
바워크, 그리고 이어지는 센터워크는 클래스의 기본. 우주 어디를 가도 쁠리에로 시작해 그랑점프로 마친다. 취미 발레인에게 클래스, 그중에서도 바를 잡고 하기에 좀 더 기본인 바워크는, 절대적 아름다움으로 향하는 매일의 첫걸음이다.
세종대 무용실. 바가 많기도 하지. 사진은 큰맘 먹고 올리는 나 자신. 어깨는 치솟아있고 맘에 안 드는 곳 1만2000개. Copyright Sujiney
그 발레 바워크를, 세종 발레 디플로마의 기말 공연에 작품으로 올린다. 기본 중 기본을 작품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린다니. 프로 무용수들 또는 바가노바 아카데미처럼 전공생을 위한 교육기관에선 많이 하는 공연이지만, 취미발레인의 바워크와 센터워크라니, 아이디어를 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기본이 작품이 된다는 것.
일상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
발레의 아름다움을 위한 구도의 길에서, 용기를 내어 세종대 과정을 두드린 용기를 낸
자신에게 고맙다.
세종 발레 디플로마 궁금하신 분은 네이버 블로그 연희동 기자리나 검색해 보시길. 혹시나 공연을 보시고 싶은 분들은 댓글 또는 '작가에게 제안하기'로 메시지 남겨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