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jiney의 발레로운 매거진 71화
이 좋은 발레를 왜 이제야 만났을까. 10대는 언감생심, 그냥 10년만, 아니 5년만 딱 일찍 시작했더라면. 복잡한데 빠른데다 정확하게 해야 하는 쁘띠 알레그로 순서에서 특히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문득 깨닫는다. 지금이라도 하고 있는 게 어디야. 나의 남은 인생 중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잖아.
늦었어도 괜찮다는 맥락에서 떠오르는 대표적 인물은, 미국의 디자이너 베라 왕(Vera Wang). 그의 우아한 웨딩드레스는 배우 손예진부터 심은하까지 선택했을 정도로 웨딩드레스계의 샤넬이다. 20년 전의 기사를 찾아보니 심은하 씨의 드레스는 당시 가격이 2500만원.
그런데, 베라 왕이 처음으로 웨딩드레스를 디자인 한 건 몇 살이었을까. 마흔이 넘어서였다. 1949년 생인 그가 첫 웨딩드레스 샵을 연 게 1990년이다.
그 전까지 그는 미국 보그(Vogue)의 에디터였다. 쉽게 말해 패션 기자를 17년을 했다고.
그러다 자기의 결혼식을 준비하던 도중 아무리 해도 자기 눈에 차는 웨딩드레스가 없었다고 한다. 못 찾겠으니 그녀가 한 선택은, 직접 디자인을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웨딩드레스 제국을 건설한다. 지금은 구두부터 각종 패션잡화까지 다룬다.
그런데 놀라운 점이 있으니, 그가 사업을 하면서 도움을 받은 것으로 10대 시절의 발레 훈련을 꼽았다는 사실이다.
베라 왕은 10대 시절 꿈이 명확했다.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꿈을 그렸다. 맹훈련을 하면서 피겨의 동작을 더 잘 수행하고 완벽도를 높이기 위해 그는 발레를 배우기로 한다. 그렇게 들어간 학교가, 뉴욕시티발레단(NYCB)의 스쿨 오브 아메리칸 발레(the School of American Ballet, SAB). 미국 발레의 아버지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이 세운 학교다.
베라 왕은 그러나 피겨 스케이팅에서도, 발레에서도 성공하지 못했다. 올림픽 선수 선발엔 떨어졌고, SAB 졸업 후 뉴욕시티발레단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이후 그는 대학에 진학, 졸업 후 보그에 취직했다.
그는 이후 뉴욕타임스(NYT) 등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발레는 내게 성실한 훈련을 하는 법을 가르쳐줬다. 발레는 내게 고통을 가르쳐줬다. 그리고 발레는 내게 아름다움을 가르쳐줬다(Ballet teaches discipline, it teaches pain, and it teaches beauty)." 베라 왕은 이어 발레로 배운 것들이 자신의 디자이너로서의 생활에 있어서도 중요한 주춧돌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사업은 쉽지 않았을 터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모두 원하는 것은 쉽게 얻을 수 없으니까. 아름다움부터 경제적 자유까지, 대개는 모두 고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럴 때마다 베라 왕은 발레에서 배운 매일의 반복 훈련과 고통을 마주한 대가로 주어지는 아름다움의 과실을 떠올렸을 터다.
바로 지난주, 베라 왕은 자신의 모교인 발레학교, SAB를 방문해 아래와 같은 사진과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SAB에서 멋진 금요일을 보내는 중! 나의 모교! 재능있고 열정적이면서 그저 묵묵히 열심히 훈련을 해내는 후배들을 보는 기쁨과 감사함!!! 발란신의 레거시는 계속된다."
베라 왕을 보면서 다시금 느낀다. 늦은 것은 없다. 지금이 가장 젊고, 지금이 가장 빠르다.
우리는 베라 왕의 발레 후배. 발레라는 잔인하지만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함께 하는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우리의 삶의 터전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든, 무엇을 하고 싶든, 그 열정을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생각해보면 기본 스텝인 파드부레조차 못했던 우리가, 쁘띠 알레그로를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성장이다.
늦었어도 괜찮다. 있는 힘껏, 각자가 원하는 바로 피어나자. 그 과정은 쓰디쓰더라도 그 결과는 달디달터이니.
By Suji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