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과 친해지기

여행은 낯선 도시와 조금씩 친해지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by 양수경
처음엔 낯설었지만,
조금씩 눈에 익고, 마음에 익어간다.
그렇게 도시는, 그리고 인생은 나에게 다가온다.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듯,

인생도 그렇게 돌아 돌아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

길을 잃어야 비로소, 그 길이 품은 온도를 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늘 이런 순간이 있다.

애써 찾아간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왔는데

문득 돌아보니—엊그제 갔던 바로 그 식당 옆이었다.

아니, 어쩌면 바로 몇 가게 뒤였을지도 모른다.


그제야 ‘어쩐지 조금 익숙하더라’ 하고 웃게 된다.

그 도시를 모르다 보니, 바로 옆에 두고도 몰라본 것이다.


낯선 도시에서는 늘 그런다.

분명 지나쳤던 길인데 처음 보는 골목 같고,

이미 본 풍경인데 새로이 낯설다.


아마 삶도 그렇지 않을까.

익숙한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늘 어딘가 낯설다.

가장 가까운 진실조차,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알아보지 못한다.




여행길에서 길을 잃는 일처럼,

우리의 마음도 종종 방향을 잃는다.

그래서 사람은 헤매며 배운다.

헤매야 길이 보이고, 잃어야 비로소 찾게 된다.


삶 역시 그러하다.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우리를 기다리는 건

언젠가 머물렀던, 가장 나다웠던 자리.

떠남 끝에는 언제나 ‘돌아옴’이 있다.


돌아온다는 건 단순히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다.

같은 자리에 서 있어도,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그게 낯섦이 주는 선물이다.

익숙함을 잃고 나서야, 내가 무엇을 의지하며 살았는지 알게 된다.




기념품 가게를 찾아 골목을 헤매던 날도 있었다.

마침내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하고

“이건 여기서만 살 수 있어!”

들뜬 마음으로 계산을 마쳤는데,

코너를 돌자마자 똑같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심지어 다음 도시에서는 반값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후회는 안 된다.

그 순간의 설렘이 이미 값을 치렀으니까.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어떤 것을 얻기 위해 너무 큰 값을 치를 때가 있다.

시간을 쏟고, 마음을 다하고,

때로는 상처까지 감수하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안다.

그 물건이, 그 관계가, 그 목표가

그렇게까지 비쌀 필요는 없었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진심은 헛되지 않다.

그 순간의 열정과 설렘이

이미 대가를 대신해 주었으니까.


결국 우리는

값을 치르며 배우고,

지나가며 성장한다.

지불한 만큼의 진심이

오늘의 나를 빚어 놓는다.




한 번은 현지인처럼 인사해보려 했다.

환하게 웃으며 스페인어로 “Gracias!” 하고 외쳤다.

그런데 듣는 사람의 표정이 잠시 멈췄다.

이내 살짝 웃으며 “Hola!” 하고 답했다.


그제야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너 지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어.

‘안녕하세요’ 하려면 ‘Hola’야.”


모두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

낯선 언어 속에서 피어난 작은 오해가

잠깐의 웃음이 되어 우리 사이를 부드럽게 채웠다.


그 짧은 순간,

언어는 달라도 마음은 통했다.

그게 여행의 언어였다.




여행지에서는 이런 실수조차 웃음이 된다.

서툴러도 괜찮고, 틀려도 용서된다.

낯선 도시의 사람들은 그 서툼 속에서 오히려 미소를 보여준다.


아마 그건 여행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이라,

모든 것이 가볍게 용서되고 이해되는 존재.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인생도 다르지 않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의 잠시 머무는 여행자다.

서로의 언어를 완벽히 알 수는 없지만,

진심이 있다면 결국 통하게 되어 있다.


그날의 틀린 인사는 나에게 작은 깨달음을 주었다.

완벽한 문법보다, 따뜻한 눈빛이 먼저였다는 걸.

삶도 그렇다.

정확한 말보다 진심이 먼저 닿을 때,

비로소 관계는 시작된다.


틀린 인사에도 미소로 답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살아가는 법이 아닐까.




여행이 그렇듯, 인생도 완벽할 수는 없지만

서툴고 빗나간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배운다.

낯선 도시의 따뜻함, 길의 온도,

그리고 사람 사이의 온기를.


잠시 멈춰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어떤 길 위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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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