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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 Mar 21. 2017

170327

일기


며칠째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오늘도 이른 시간에 몸을 뉘였다. 잠깐 눈을 붙일 생각이었지만, 힘들어서 그대로 잠들 뻔 했다. 잘못 맞춘 알람 덕에 몸을 일으켰다. 목이 갑갑해서 숨 쉬기 힘든 것도 한 몫 했다.


지난 주말, 날씨가 좋아 대충 걸쳐입고 삼청동 인근을 돌아다녔다. 햇살만 좋았지 미세먼지 잔뜩 낀 날이었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눈에 안 보이면 믿지 않고, 겪지 않으면 심각성을 못 느낀다. 뉴스에서 그리도 떠들어대는 미세먼지라는 것이, 머리카락의 20분의 정도밖에 되지 않는 그 작은 것이 나를 이리도 괴롭힐 줄은.



일상이 틀어지고 있다. 빨아둔 속옷과 수건이 똑 떨어졌다. 빨래 바구니는 꽉 찼고, 설거지통에 안 씻은 그릇이 쌓였다. 바닥엔 먼지가 구른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생활의 흔적을 바지런히 지워낼 힘이 없다. 축축하고 찝찝해도 맥 없이 젖을 수 밖에. 몸을 움직일 힘이 없다. 운동도 쉬고 있다.


연수가 시작된 후부터 계속 피로한 상태다. 누군가는 놀러가니 좋겠다고 말하지만 이 시간도 만만치 않게 버겁다. 내 위치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심각하고 중대한 일은 아니지만, 평가는 평가다 보니 정신적 압박을 받는다.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견디기 힘들다.


낯선 사람과 만나는 일이 벅찬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관계도 결국 타인에 대한 평가를 토대로 만들어지는 것. 이 사람에게 내 첫인상이 어떨지, 알게 모르게 신경쓰다보니 집에 돌아올 때쯤 되면 모든 게 소진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면서 돌림노래처럼 드는 생각,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건가. 자책으로 밤을 지샌다. 보통 하루는 그렇게 마무리된다. 단 하나 다행인 건 어깨가 뭉치지 않는다는 것.



같은 업계에서 일하다 결국 뛰쳐나온 이의 글을 봤다. 길고, 전반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텍스트라 모든 내용이 한눈에 들어오진 않았지만 필자가 '그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반복적으로 강조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그 '열심히'를 곱씹고 있다.


누군가는 글만 읽어도 과한 자의식이 느껴진다고 평했지만 그보단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상한 포인트에서 공감했기 때문. 불안, 초조, 부담감 같은 것에 사로잡혀 앞뒤 안 가리고 열심히 뛰던 때가 (이렇게 말하는 거 좀 우습지만) 내게도 있었다.  열심히 한다고 모든 게 보장되는 건 아니었으나, 믿을 것은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었기에 맹렬히 달리던 때가. 결국 원하던 바는 이루지 못했다. 열심히 했고, 성과도 있었지만, 그게 내가 꿈꾸던 것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삶의 아이러니.


이건 꽤 큰 충격을 남겨서 여전히 이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열심히 하지 않으려는 습성이 생긴 것도, 어쩌면 이 때문일지도. 열심히에 배신당하고 싶지 않고, 아무에게도 따질 수 없는 억울함을 집어먹고 싶지 않아 나태함을 택하는 지질한 인간.  여하튼 지금은 그렇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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