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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 Apr 09. 2017

170408

공기 안좋은 거 뻔히 알면서도 밖에 있었다. 해가 좋아서


오늘 미세먼지는 건강에 나쁜 수준이라고 했다. 대기 정보 앱이 그렇게 알렸다. 마스크를 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그냥 나왔다. 외출을 포기하는 건 생각도 안 했다. 바로 며칠 전까지도 목이 잠겨 고생했는 망각은 빠르다. 온종일 집에 있으면 이유없이 가라앉을 게 분명했다. 공덕동과 달리 공간이 주는 무력감은 덜했지 햇빛이 잘 드는 이 방도 마음의 어두운 구석까지 밝혀주진 못한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자기 연민과 가벼운 혐오는 떨쳐내기 쉽지 않다. 이럴 땐 적극적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외출은 쉬운 탈출법.


어젯밤에 비죽비죽 눈물을 흘리다 내일은 어쩌나 싶었다. 퍼득 학교가 떠올랐고, 다행스러웠다. 도망칠 공간이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안정을 준다. 아직 학교에 적을 두고 있다는 게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땅에 뿌리를 둔 채로 드라이플라워가 된 꽃


빠른 길이 있지만 익숙한 쪽을 택했다. 익숙하면서 단순한 길. 공덕역에 내려 학교까지 걸었다. 얼굴 다른 사람들과 걸어오던 같은 길. 공덕역 5번 출구 앞 그 꽃나무는 오늘 다시 보니 벚나무가 아닌 것 같다. 작년 이맘때, 그 나무에 핀 새햐안 꽃을 카메라에 담던 날도 마음이 들쑤셔 밖으로 나왔었다. 책 싸들고 한강에 간 날이었다. 기분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군중 속 고독만 느끼고 잔뜩 풀 죽어 집에 돌아왔다. 순서 없이 불쑥 치미는 기억을 되짚으며 천천히 걸었다. 봄바람이 적당했다.


한 계절이 달라졌을 뿐인데 변한 게 많았다. 공덕동을 떠날 때쯤 신축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던 오피스텔은 이제 정말 번듯한 외관을 하고 세입자를 찾고 있었다. 출퇴근길 늘 지나가던 치킨집 옆엔 못보던 강아지 한마리가 자리잡았고, 집 앞에 있는데도 비싸서 한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 카페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있던 목 좋은 자리로 옮겼다. 마음이 허기져 집밥이 그리웠던 때 자주 갔던 정거장 식당도 집과 더 가까운 곳으로 옮겼다. 큰 연두색 간판도 새로 달았다. 이사갈 무렵, 더이상 오지 못할 것을 알기에 두고두고 아쉬웠던 곳 중 하나다. 좋아하던 것들이 사라지지 않아 다행이다.


변하지 않는 건 대개 사람이다. 언덕에 위태롭게 걸쳐있는 작은 구두수선집 아주머니는 오늘도 체크남방을 입고 머리를 헐렁하게 묶은 채로 해바라길 하고 있었다. 남선반점 아저씨는 지난 겨울과 같이 양복에 넥타이 차림으로 배달을 나갔다. 효창공원 앞 가마솥 도너츠 트럭 아주머니 아저씨도 그대로다.  아마 3천 원에 7개 하는 그 도너츠로 끼니를 떼우는 노인들도 볕 잘드는 공원 한켠에서 장기를 뒀겠지. 굴곡 없이 반복되는 일상. 무료하나 안정감을 주는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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