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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 Aug 15. 2018

180814

일을 하다보면 때때로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낯짝이 두껍나, 생각할 때가 있는데 돌이켜보니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일 터졌다고 그동안 연락도 뜸하던 이들에게 부랴부랴 전화를 걸어 '잘 지내셨냐, 날씨가 덥다'는 식의 시덥지 않은 안부 인사를 건네고 '다름이 아니라...' 하며 허겁지겁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 이슈가 죽기 전에 글이 나와야 한다는, 지극히 언론사 중심적인 이유로 말도 안 되는 마감 일정을 던져주는 것. 생각만큼 글이 나오지 않으면 전화 걸어 이것저것 지적하고, 공들여 쓴 문장을 손쉽게 쳐내는 것. 그런데 이 무례한 절차를 거쳐 글을 내놓은 필자에게 돌아가는 보상이라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온당한 값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원고료 몇 푼이 전부다.

그래서일까. 아무리 뻔뻔해도 사람인지라, 종종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한다. 해결할 수 없는 죄책감이 고개를 쳐들 때면 '그래도 좋은 일을 하니까'라며 자위하거나, '그래도 다른 데 보다는...'이라며 얼마 차이나지 않는 원고료 가지고 도토리 키재기를 한다. 정신승리의 나날이다. 가끔은, 다들 이렇게 일하고 사나 싶기도 하다. 모두 나처럼 뻔뻔하고 낯짝 두껍게 돈 벌고 있나. 밥숟가락 지키고 사는 일이 이렇게나 고단한가.

어디선가 뻔뻔하게 돈 벌고 있을 우리가, 해가 지면 넉넉한 식탁에 둘러 앉아 김 나는 저녁을 떠먹으며 하하호호 웃을 수 있을까. 지난한 하루 속에서도 그런 여유를 나눌 힘이 서로에게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모래마냥 서걱거리던 낮의 일은 잊고, 편안히 서로 몸을 맞대고 위로 받을 수 있기를. 치열한 하루가 이렇게나마 정리 돼야, 뻔뻔한 와중에도 누군가를 돌아볼 틈이 생길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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