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정자 수가 감소하고 있다면
1995년 샤나 스완은 "환경 내 호르몬 활성 물질"(EDC)의 영향을 조사하는 국립 과학 아카데미 위원회에서 덴마크의 한 연구를 검토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1938년과 1991년 사이에 정자 수가 크게 감소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연구는 한 의사가 자신의 연구실에 있는 정액 샘플의 정자 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떨어지는 것을 발견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위원회는 ‘별로 신경을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그냥 보고 알려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덴마크 연구에서 제시된 정자 수의 급격한 감소가 사실일 수 있다는 데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결과를 왜곡할 수 있는 교란 요인을 찾아내고 원본 61개를 입수해 정자 수를 세는 방법, 남성의 나이, 비만인 수, 모집 방법, 출신 국가 등을 분석하자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소수점 둘째자리까지도 변하지 않은 똑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통계학자이자 역(유행병)학자 샤나 스완 박사가 지난 11월 그녀의 최신 연구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정자 수가 감소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1930년대 후반부터 관찰된 정자 수 감소는 처음에는 서방 국가들에서 관찰되다가 이후 개발도상국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났으며 최근에는 가속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완 박사는 신체의 자연 호르몬을 방해할 수 있는 ‘내분비 교란’ 화학 물질 (EDC)의 영향을 연구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녀가 생식 건강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짓고 있는 화학물질은 살충제와 프탈레이트, 그리고 비스페놀. 최근 몇 년 동안 모유, 태반 조직, 소변, 혈액 및 정액에서 이들 EDC가 미량 검출됐다.
1. 살충제(농약)
스완 박사는 미주리에서 환경에 따라 정자의 질이 달라지는지에 대한 또다른 연구를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미주리주 반농촌 지역의 남성 참여자들은 도시 중심부에 있는 남성 참여자들보다 움직이는 정자가 절반인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정액의 질이 좋지 않은 참가자는 도시에 있는 참가자에 비해 8가지 살충제 수치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완은 오늘날까지도 살충제에 대한 각국 정부의 규제가 충분치 않다고 말한다.
2. 프탈레이트
스완 박사의 중요한 발견중 하나는 항문에서 음경 아래까지의 길이, 즉 AGD(ano-genital distance)로 남성의 생식능력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탈레이트는 포장 및 제품에 사용하기 위해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하는 물질이다. 쥐 실험의 경우, 수컷 태아가 프탈레이트에 노출되었을 때 임신 초기에 일어나는 정상적인 작용인 테스토스테론 급증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로 인한 영향으로는 더 작은 페니스, 때때로 기형, 미하강 고환 및 더 짧은 AGD 등이 있었다. 사람의 경우, 프탈레이트 노출이 많은 여성일수록 평균보다 짧은 AGD를 가질 가능성이 13배 더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AGD가 짧은 남성일수록 정자 수가 적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 산모의 프탈레이트 노출은 발달중인 태아의 생식기관과 정자수에 영향을 미친다.
3. 비스페놀
비스페놀은 식품 저장 용기와 젖병에 사용할 수 있도록 플라스틱을 경화시키는 데 쓰인다. 일부 기업들은 자신들의 플라스틱 병과 유아용품에 "BPA 없음"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는 음식과 음료로 스며들 수 있는 화학물질인 비스페놀-A를 지칭하는 것인데 이것을 아주 약간만 다른 물질로 대체한 사례도 있었다. 비스페놀-A 대신 동일한 기능을 할 수 있는 화학물질을 이용한 것이다. 이 경우 전체 화학 구조의 생체 축적성이나 호르몬 교란역할은 기존과 동일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20세기에 시작된 플라스틱 시대는 끝없는 편리함과 경제성, 위생적인 생활환경을 제공했다. 젖병, 장난감, 식품 용기, 의료 기기 및 일회용 수저의 물결 속에서 제조업체들은 합성 폴리머가 안전할 뿐만 아니라 좋은 삶에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퍼뜨렸다.
이제 인간은 플라스틱을 입자와 증기로 섭취하게 됐다. 플라스틱의 화학 물질은 특히 가열될 때 용기에서 식품으로 침출된다. 2020년 연구에 따르면 젖병을 먹는 아기는 하루에 수백만 개의 미세 플라스틱 입자를 삼키고 있지만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테프론에 사용되는 성분인 PFOA는 암, 궤양성 대장염 및 선천적 기형과 관련이 있지만 테프론 제조사인 듀폰이나 테팔은 2013년이 되어서야 PFOA 생산을 중단했다.
물론 다이어트, 스트레스, 비만, 늦은 나이에 가족을 형성하는 경향은 모두 현대인의 생식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EDC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스완 박사의 견해다.
초기 생애에서의 화학물질 노출과 질병 발생의 연관관계는 해당 분야 임상 의사들 사이에서도 이미 널리 인정받고 있다. 내분비학회(Endocrine Society)에서 EDC 연구를 이끌었던 오스틴 대학교 약리학 교수 안드레아 고어(Andrea Gore)는 "과거에는 논란이 있었지요"라고 회고한다. "특히 화학 업계에서 이 논란을 계속 유지하려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논란이 있는 분야는 아닙니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지식이 축적되었습니다."
기후 변화 과학자들도 비슷한 회의론에 직면한 적이 있다. 지금은 기온이 높지만 곧 다시 내려갈 것이며, 그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통계로 확인되고 있다.
평균 정자 수가 감소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있다. 이가 걱정해야할 만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정자 수가 평균보다 낮다고 해서 아이를 가지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정자 수가 특정 수준(정액 1밀리리터당 약 4천만 개 미만)에 도달하면 생식력이 손상될 수 있다.
스완 박사는 대리모의 증가와 의학적 도움을 받은 생식(체외 수정 등)이 늘어나는 현상은 우리가 우려할만한 전조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의 가설이 맞다면, 우리는 현대 인류가 요리하고 먹고 생산하며 포장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스완 박사는 코팅팬으로 요리하지 않는다. 주철냄비를 사용하고 포장되지 않은 유기농 과일과 채소를 사려고 노력한다. 플라스틱이 아닌 스테인리스 또는 유리 물병을 쓸 것을, 전자레인지를 이용할 경우 유리 또는 세라믹 용기에 사용할 것을 권유한다.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에 방사성물질, 납, 수은이 들어갔던 것이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았다. 헤로인이 첨가된 감기약을 일상적으로 복용했고, 치통약으로 코카인이 흔히 쓰였다. 지금 들으면 경악할만한 일들이지만 그때에는 합리적이고 평범한 선택이었다. 지금 우리가 일상속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플라스틱도 언젠가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이 글은 파이낸셜타임즈의 기사 Global sperm counts are falling. This scientist believes she knows why 를 재구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