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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내음 Jul 30. 2024

'오블라디 오블라다'

어쩌다 밴드

앙코르! 앙코르!


마지막 곡이 끝나자 박수와 함께 청중들의 환호가 터져 나온다. 난생처음 겪는 일이다.  십 미터의 거리도 안 되는 곳에 빙 둘러앉은 관객들이 환한 미소를 머금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이 내뿜는 공기가 선물이고 또 다른 음악이다.      


봄날의 나른한 오후였다. 낯선 전화번호가 울렸다.

"저 기억하세요? 000입니다. "

"네?...."

 

기억은 몇 년 전 수강했던 글쓰기 수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화센터에서 우연히 보게 된 ‘글 쓰는 목요일“ 배너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글이라고는 초등학교 때 일기를 쓴 것, 대학교 때 과제를 제출한 것과 논문을 쓴 것이 다였던 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진짜 글을 써보고 싶었다. 용기를 내보니 이미 정원이 마감되었다고 했다. 애써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었는데 개강 전날 센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 사람이 취소하게 되었다고 수업에 등록하라는 전화였다.      


얼떨떨한 심정으로 첫 수업에 참석했다. 수강생들이 자기소개를 하는데 어쩜 그렇게 재치 있고 조리 있게 자신을 설명하는지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글쓰기 수업이 부담스러워졌다. 게다가 나와 같은 신입 수강생이 네다 섯명이 있었는데 몇 주가 지나면서 하나둘씩 핑계를 대고 수업에서 빠지는 것이 아닌가. 수업이 있는 매주목요일은 갈까 말까 하고  갈등하는 날이 되어버렸다.



“글 잘 읽었어요. 참 좋던데요”

처음으로 써낸 글이 좋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서 빙빙 돌던 갈등이 신기하게도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그 한 마디는 두고두고 마음속에 기분 좋은 떨림으로 저장되어 있었고 그 격려에 힘입어 첫 학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전화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는 바로 그 따뜻한 한 마디의 주인공이었다. 반가움에 내 목소리도 한 톤 높아졌다.     

 "아 안녕하세요? "      


아마추어 음악 밴드에서 베이스기타를 담당하고 있다고 소개하는 그 사람은 건반 연주자를 찾고 있는데 혹시 맡아줄 수 있냐고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전화를 끊고 나서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낯가림이 심하고 쓸데없는 자존심이 센 내가  한 번에 하겠다고 답을 해버린 것이다. 며칠 생각해 보고 연락한다고 하면 될 것을…    

 



초저녁의 홍대 앞 거리는 활기가 넘쳤다. 지도 앱을 켜고 밴드 연습실로 찾아 들어가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젊은 청년들로 가득한 그 거리에 있는 내가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클래식만 하던 내가 과연 잘하는 일일까? '’ 혹시 내 학생이나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민망해서 어떡하지?'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가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묵직한 문을 밀고 연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슴푸레한 불빛 속에 몇 명의 악기 연주자들이 보였다. 베이스 기타리스트, 드럼 연주자, 클라리넷티스트, 보컬과 기타를 맡은 꽁지머리를 한 사람등,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네 명의 남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그까짓 전자 건반악기 하나쯤이야 뭐 식은 죽 먹기겠지’ 하고 생각한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전원을 키는 것도 몰라서 한참을 헤매서야 겨우 스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건반의 터치와 페달도 피아노와는 많이 달랐다. 수십 가지의 다양한 음색을 한 악기 안에서 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지만 음색을 찾아가는 일이 숨은 그림 찾기처럼 까다로웠다.




클래식 솔로 피아노만 하고 살아온 내게 밴드 음악은 달콤하면서도 때로는 살벌했다. 여럿이서 같이 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때로는 멤버 들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과 불편함이 있다.


“이 부분을  이렇게 같이 연주하면 어떨까요?”

“괜히 헷갈릴 것 같아요. 그냥 나누지 말고 혼자 다 연주하세요 “


상대방의 태도에  때로는 상처를 받기도 하고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흥미가 없어진다. 늘 제자리걸음이다.


의견이 또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동시에 내가 하는 말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그냥 내 생각을 숨겨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만 더 아름답고 풍성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간다.


앙상블은 대화이다. 자신을 단단하고 또 유연하게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 남의 시선에 휘청거리지 않을 수 있도록, 그래서 내가 원하는 나의 목소리로 다른 사람과 대화할 수 있도록…     


주인공이 되어 주선율을 연주하는 것도 멋지지만 주선율이 빛나도록 받쳐주는 것도 얼마나 매력이 있는 지를 밴드를 하면서 깨닫는다. 내가 듣는 다른 사람의 소리와 남이 듣는  나의 소리가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음향은 축제와 같다.


부드럽게 서로를 어루만지며 대화하다가 땨로는 자기의 음색을 드러내며 자신만의 세계를 펼치기도 한다.  호흡 한 번으로, 소리의 시작과 끝으로, 음과 침묵으로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간다.




어쩌다 시작한 밴드가 햇수로 삼 년째를 맞았다. 드디어 첫 공개 연주 날이 되었다. 자그마한 공간에는 몇십 명의 관객들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잘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눈빛과 마음을 주고받으며 하나가 된다. 연주자들끼리, 연주자와 청중이 숨소리와 눈빛으로 은밀하게 소통하는 순간, 솔로 연주와는 다른 차원의 즐거움을 맛본다.  

     


 

'삶은 계속되고 인생은 흘러가는 거야'라는 뜻을 가진 아프리카 말의  ‘오블라디 오블라다’를 마지막 곡으로 연주한다.


어쩌다 시작한 밴드에서 나는 유연해지고 , 또 더욱 단단해진다.


‘오블러디 오블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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