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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랏빛 스카프는 바람에 나부끼고

런던 이야기

연속 나흘째, 혼자 갤러리와 박물관을 찾는 날들이 이어졌다. 오늘은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다. 런던의 명소, 헤롯 백화점에 가보자는 생각으로 지하철을 탔다.


백화점 바로 옆에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망설이다가, 잠깐 들렀다 가자며 계획을 바꿨다.


도착하자마자 허기가 밀려왔다. 점심을 먹을 곳을 찾으며 주변을 둘러보던 중, 햇살이 투명하게 스며드는 유리 건물 안의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주문했다.



태이트 모던 갤러리의 카페에서 값에 비해 다소 실망했던 기억이 스쳤다. 이번에도 기대 없이 첫 입을 베어 물었다. 예상 밖이었다. 담백하고 자연스러운 맛. 긴장이 스르르 풀리며, 순간이 더 따뜻해졌다.


전시실로 향하던 길, 문득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건물과 아름다운 정원이 시야에 들어왔다. 햇살 아래 사람들은 웃고, 쉬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치 꿈속 같고,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나도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본다. 벤치에 앉는 순간, 평온한 감동이 온몸을 감싼다.


전시실은 웅장한 조각과 섬세한 작품들로 가득했다. 조각상 앞에 오래 서 있는 사람들, 작은 의자에 앉아 스케치를 하는 이들. 나는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손을 멈췄다.


‘사진에 담느라 마음에 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잠시 부끄러워졌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오는 길, 기프트 숍에 들렀다. 예쁜 열쇠고리 하나, 그리고 연보랏빛의 하늘하늘한 스카프 하나를 골랐다. 가볍고 투명한 색감이 마음에 들었다.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다시 정원으로 향한다. 그 풍경 속 ‘나’를 기억 속에 남기고 싶은 강한 이끌림이었다. 용기를 내어 혼자 사진을 찍던 여성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녀는 따뜻한 미소로 여러 장을 찍어주었고, 자신도 내게 사진을 부탁했다.


사진 속 나를 바라본다. 햇빛과 바람이 뺨을 어루만지고, 스카프가 얼굴을 간지럽힌다. 그 순간, 내 마음도 바람을 타고 가볍게 흩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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