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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내음 Nov 28. 2021

그래요, 복동씨

엄마가 보내준 선물

문자 알림 소리에 눈을 가늘게 뜨고 손을 위로 뻗어 더듬더듬 휴대폰을 찾는다. 드리워진 커튼 뒤로 어슴푸레 보이는 창밖 풍경은 아직 채 날이 밝지 않은 이른 아침이다. 이 시간에 누굴까.


‘오늘시간되새요‘.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틀린 짤막한 문장에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복동씨였다. 주섬주섬 외출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모처럼 마주하는 이른 아침의 찬 공기가 여유롭고 상쾌하다.      




복동씨를 처음 만난 건 23년 전, 둘째 아이를 낳고 백일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직장을 다시 나가기 위해 아기를 봐줄 분을 구하고 있었다. 전문 시설에 등록했더니 여러 명의 후보를 소개해주었고, 그중의 한 명이 복동 씨였다.. 동그란 얼굴, 따뜻하고 잔잔한 눈매, 짧은 파마머리의 그녀는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작년에 막내가 대학에 들어갔어요. 갑자기 시간이 많아져서 처음으로 지원을 했어요. “     


처음 본 순간부터 왠지 낯이 설지 않고 정감이 갔다. 그다음 날 다른 후보자를 만나보기로 되어 있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이 사람이다’라는 결정을 내렸다. 우유부단한 나에게는 드문 일이었다. 당장 내일부터 나와 줄 수 있냐는 질문에 복동씨는 ‘그래요’라며  무심한 듯 명랑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래요’가 복동씨가 제일 잘 쓰는 단어라는 것을 안 것은 그녀가 우리 집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갑자기 일이 생겨 늦게 퇴근하는데 괜찮냐고 연락을 해도 ’ 그래요 ‘, 조금 일찍 나와주실 수 있냐고 물어도 답은 한결같이 ’ 그래요 ‘였다.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식, 운동회, 졸업식 사진을 보면 늘 아들은 복동씨의 손을 잡고 웃고 있다. 엄마인 나보다 복동씨를 더 좋아하는 아들아이에게 약간의 서운함을 느낀 적도 있었지만, 나보다 더 사랑을 듬뿍 주고 표현해주는 그녀이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는 따뜻한 외할머니, 나에게는 든든한 엄마 같은 언니가 돼주었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막 진학했을 무렵이었다. 복동 씨가 며칠 못 나올 것 같다고 해서 궁금해하던 차에 낯선 번호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떡해요… 엄마가… 많이 아파요…. 지금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울먹이는 소리로 전화를 한 사람은 복동씨의 딸이었다. 요즘 들어 숨이 찬다고 한 복동씨의 말이 갑자기 떠오르며 가슴이 덜컹하고 내려앉았다. 병원으로 달려가 보니 복동씨는 눈자위까지 노랗게 물든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히 걱정하게 하네요. 다행히 수술 날짜 빨리 잡혔어요. 수술받으면 다 괜찮아질 거예요"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는 나를 오히려 복동씨가 따뜻하게 위로해줬다.  병명은 담도암이었다. 그것도 3기…. 수술은 많은 부위를 자르고 이어 붙이는 7시간이나 걸리는 대 수술이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는 긍정적인 힘과 노력으로 모든 어려움에 맞서서 조금씩  나아가는 복동씨를 보면서, 행복이란 조건이나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고 조금씩 실천하고 가꾸어야 할 과정이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찬은 없지만 들어와서 곰국에 아침밥 좀 먹고 가요".


복동씨가 환한 얼굴로 나를 맞는다. 부엌 쪽을 바라보니 이미 식탁이 한 상 차려져 있다. 고사리, 양배추, 집에서 구운 김, 맛깔스러운 김치가 놓여 있고, 부글부글 끓는 솥에서 곰국을 한 사발 퍼서 현미밥과 같이 내민다.  정성껏 차린 복동씨의 밥상을 받은 것이 얼마만일까.


”건강은 좀 어떠세요? “

”며칠 전 검진일에 주치의 선생님이 나보고 무슨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살았냐고 물어봐요. 수술 한지 거의 5년이 되어 가는데 이적 껏 재발도 없이 잘 유지되고 있다고요. “

'그럼요, 좋은 일 엄청 많이 하며 사셨죠. 제가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아세요?’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처럼 많은 데 왠지 부끄러워 입 속으로 꿀꺽 삼킨다.

     

집으로 가려는데  비닐봉지에 든 묵직한 꾸러미를 내민다.  

"만두 좋아하죠? 큰 맘먹고 오랜만에 한번 만들어봤어요. 돼지고기도 좋은 부위 사다가 갈고, 배추도 강화에서 보내온 유기농 김치예요.”      

복동씨의 목소리는 늘 무심한 듯, 명랑한데 묘하게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


집으로 돌아와 점심으로 만둣국을 끓인다. 따끈한 만두를 한입 베어 무니 입안 가득 육즙이 흐르며 아삭아삭하고 담백한 맛이 엄마의 만두가 떠오른다. 특별한 날이면 만두피까지 손수 반죽하여 정성스레 만두를 빚곤 했던 엄마… 만두를 먹는 내내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지며 복동 씨의 얼굴이 서서히 오버랩된다.


‘혹시 복동씨는 하늘에 계신 엄마가 보내신 천사가 아닐까.‘




'음식이입맛에맞을랑가모르겠네요'

‘만두가 너무 맛있어요”

“맛있다고하니고맛네요”


띄어쓰기도 없이 이어지는 문자를 천천히 끊어 읽는데 갑자기 복동씨와의 추억이 슬라이드 필름처럼 눈앞에 펼쳐지며 코끝이 시큰해진다.


창 밖으로 흰 눈이 펑펑 쏟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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