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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내음 Aug 03. 2022

눈의 이물질, 마음의 이물질

비문증을 겪다 생긴 일

     

오른쪽을 보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보면 왼쪽으로 달아난다. 눈을 움직일 때마다 날아다니는 작은 검은 물체에 나도 모르게 손을 허공으로 휘젓는다.


‘웬 날파리지?’


밤이 되면 사라지는 조그만 검은 물체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나를 놀리듯 존재감을 과시한다. 며칠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나타나는 뜻밖의 불청객에 몸도 마음도 심란해진다.      


문득, 친구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녀가 모처럼 외국으로 휴가를 떠났을 때였다. 식당에서 음식을 담아 온 흰 접시에 까만 점들이 무수히 박혀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직원을 불러서 접시를 바꿔줄 것을 요청을 했다고 한다. 다시 가져온 접시도 마찬가지였다.  옆에 동행한 다른 사람이 접시가 깨끗한데 왜 그렇게 유난을 떠냐고 할 때야  덜컥 겁이 났다고 했다.


자기의 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 친구는 휴가 일정도 취소하고 그날로 귀국해서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고 했다.


‘혹시 친구처럼 내 눈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닐까 ’

걱정이 돼서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안과를 찾았다.      

눈에 약을 넣고 여러 가지 검사를 한다. 동공을 키우는 약이라고 한다. 차가운 금속성 기계에 얼굴을 대고 검사가 시작된다. 눈앞에서 노란빛이 번쩍번쩍 움직이고 초점이 뚜렷하게 잡히지 않는 흐릿한 시야로 빛 가는 곳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인다.      



결과를 기다리며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 잘 때까지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잠들기가 일상인 요즘, 모처럼 찾아온 이 조용한 시간에 오롯이 나를 맡기고 있다. 여러 가지 장면들이 슬라이드 필름처럼 빠르게 눈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인가. 정확히 무슨 검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학병원 안과에 다녀온 후,  오늘처럼 앞이 흐릿하게 보였었다. 며칠간 원시 안경을 쓰고 다녀야 해서 창피한 마음에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기도 했다. 엄마가 종합장에 두껍게 선을 그어주며 내 숙제를 도와줬지만, 나의 받아쓰기 문장은 여전히 삐뚤삐뚤 선을 넘어 제멋대로 흩어져 있었다.  

   

"언니, 내가 아는 사람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서 병원에 갔다가 녹내장이 발견되었대. “  

동생의 걱정스러운 목소리도 들리고, 최근에 황반변성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온 친구의 우울한 목소리도 스쳐 지나간다.  자주 가던 카페에서 만났던  안내견과 동행하는 시각장애인인 젊은 청년의 모습도 떠오른다.

    

  



“000 씨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한참을 기다리는데 내 이름을 부른다. 진료실로 들어가니 의사가 사진을 뚫어지듯 들여다보고 있다.    

“혹시 다른 심각한 원인이 있을까 봐 정밀 검사해 봤는데, 다행히 다른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았네요. 비문증이라고도 불리는 흔한 증상이에요. 일종의 노화로 생긴 증상이라고 볼 수 있죠. 더 나빠지지 않게 잘 관리하셔야 해요”.       

“언제 이 증상이 없어지나요?”

희미한 안도감을 느끼며 의사에게 물었다.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생활하세요.”    




아침에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본다.

의사가 처방해 준 대로 안약도 수시로 넣고, 눈 주위를 가볍게 마사지도 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것을 보느라 고단하고 혹사했을 눈을 토닥여준다. 오늘도 어김없이 한 마리의 날파리가 떠다니며 나에게 아침 인사를 건넨다.  언제 그 귀찮은 불청객이 사라질까에 조바심내고 안달했지만 이제는 거부하거나 억지로 떼어내야 할 이물질이 아니라 살살 달래고 어르며  함께 살아갈 나의 동반자라는 생각에 이른다.



모처럼 바라본 파란 하늘에 새털 같은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그동안 많은 것을 보느라 고단하고 피곤했을 내 눈에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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