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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내음 Mar 27. 2024

<사물의 눈>

우경미 <사물의 눈>을 읽고

 사물의 눈

나는 그곳에 있었다.

무자비한 눈빛 아래,

나는 침묵했다.

사물은 날아가고 뼈는 탈구되는 곳.

그곳을 벗어나니 기억은 얼음에 박혀 있었다,

감각이 사라지는 곳,

내가 침묵했던 곳.

참을성 있게.

사물의 눈

나를 증명하라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의 소설이었지만 묵직한 내용이 난해하게 다가왔다. 장소도, 주인공의 이름도, 시대적 배경도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어서 답답했다. 추리소설을 읽는 마음으로 한 문장 한 문장의 숨겨진 뜻을 찾아서 읽었다. 멈추고 또다시 읽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는 무얼 하고 있는 사람이고 왜 이국땅에 숨어 살고 있을까. ‘여자’는 무슨 사연으로 그곳에 왔을까.     


이국땅을 떠돌다 세상을 떠난 '김달이 할머니'를 중심으로 모든 등장인물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먼 이국땅인 호수 도시에 도피 중인 고문 기술자인 ‘그’는  호수 산책길에서 만난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인 주정뱅이 ‘영감’을 만나고,  그 영감의 소개로 이 도시에 숨어 사는 동족의 ‘여자’를 만나게 된다.


이 도시에 정착한 일본군 위안부였던 ‘김 달이’의 삶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녀의 유해를 한국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노력하던 두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그’는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또한 김달이 할머니를 잘 알고 있는 나치 피해자 ‘애나할머니’와 고문 피해자인 ‘여자의 아버지’는 고문 기술자였던 ‘그’를 점점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한다.       


일본군 위안부였던 김 달이의 삶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녀를 아는 ‘영감과 ’ 애나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불행했던 현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김 달인의 유해를 고국으로 송환하려고 노력하는 영감과 여자, 그리고 그들을 만나며 과거의 자신의 행동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그‘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고통이 맞물려 있고 아직도 진행 중임을 말해준다.      


"뼛속까지 통증이 느껴졌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방안을 휘감아 빙빙 돌았다. 그는 문고리를 움켜잡았다. 불에 덴 듯 손바닥이 뜨거웠다. 그는 소리쳤다. 살려달라고. 그는 그런 건물이 주는 위압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열정을 바쳐 일하던 곳이기도 했다. 애나 할머니의 꺼진 얼굴을 보자 과거는 단박에 회송되었다."                


두 번에 걸쳐 읽고 나니 등장인물들의 삶이 조금씩 나에게 전해지는 듯했다. 무겁고 불편한 내용 때문에 중간에 읽는 것 마저 포기하고 싶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나. 확인되지 않은 온갖 소문과 추측성 기사에 타인의 고통과 상처를 가볍게 말하고, 진실을 외면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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