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기록
무엇이 되든 좋으니 기록해놓자고 마음먹었다. 그 마음을 먹은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도 제대로 된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두려움, 불안 그런 것들이 남아있어서다. 내 글이 남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상처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교육이라기보다는 보육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매일 글을 쓰다 보면 이 아이들 이야기가 저절로 나올 것이고, 그렇게 써 내려가다 보면 좋은 말만 쓰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글은 솔직해야 한다는 신념 따위를 가지고 있어서다.
그럼 결국에는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상처 받지는 않을까? 내가 속한 집단에 피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에라, 모르겠다. 내가 누군지 알 게 뭐고 내 글에 등장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또 알 게 뭔가. 나는 솔직한 기록을 남길뿐이다.
아침부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주말 신나게 집에서 보내고 오더니 또 난리구나. 책 읽는 시간, 그 짧은 10분을 견디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장난을 거는 1번 아이. 악의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다른 아이들의 신고(?)로 개인적인 면담을 이 1번 아이와 가장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아이의 천진난만함을 누르고 집단에 녹아들게 강제하는 것은 나의 역할이다. '누군가에게 하기 싫은 일을 강제하는 것'이 폭력의 범위에 들어간다면 나는 매일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폭력을 그만두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상상해본다.
시장판이다. 서로 더 큰 목소리를 내겠다고 소리 지른다. 떠든다. 기분이 나쁘다며 상대를 때린다. 어지른다. 치우지 않은 상태로 더럽게 지낸다. 아무도 집중할 수 없다. 조용히 하라는 아이들과 떠드는 건 내 맘이라는 아이로 나뉘어 전쟁을 벌인다. 이 모든 것을 말려주기를 바라며 여기저기서 나를 찾는다. 피만 안 튀겼지 아수라장.
그럴 것이다. 내가 확정적으로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오늘 잠시나마 실험해보았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고 밖에서 지켜보았다. 친한 친구들과 다닥다닥 붙어서 서로 손을 붙잡고 떠들고 뛰어다닌다. 가위로 종이를 열심히 오린다. 바닥에 뿌린다.(뿌려지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결국 내가 나타나자마자 몇 명이 쪼르르 달려온다. "1번이랑 7번이랑 싸웠어요!" "쟤들 거리두기 안 해요. 얼른 앉으라고 하세요!" 이런 상태로 방역이 웬 말인가. 하루하루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꼼짝도 하지 못하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아이들을 그런 식으로 억압하고 싶지는 않은데.
점심 먹으러 다녀오는 길에는 1번이 웃으면서 잘 걸어가고 있는 4번을 팔로 '내리쳤다.' 키 차이가 나서 위에서 내려치는 것으로 보였다. 어려서 선과 악이 무엇인지조차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저런 일을 당하면 상대방이 아프다는 것쯤은 알 텐데. 아이가 '웃으며' 누군가를 때리는 모습을 볼 때면 성악설을 안 믿으래야 믿지 않을 수가 없다.
한숨 쉬었던 이야기를 실컷 하고 보니 3월에 비해 나아진 점도 많다. 3월 첫 주에는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하루 한 명씩 무릎을 까서 피가 날 정도로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던 아이들이었다. 이제는 제법 유아 티를 벗고 뛰지 않고 줄 맞춰 다닐 줄도 알게 되었다. (내가 지켜볼 때뿐이기는 하지만.)
내일은 제발 아이들 장점을 더 발견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길 바라본다. 창작에 일가견이 있는 재미난 아이가 내일부터 나흘간 독도에 간단다. 글쓰기, 그림 그리기 등 반짝이는 창의성을 보여줘서 올해는 이 아이 작품 보는 재미에 지내는데... 나흘이나 자리를 비운다니 괜히 섭섭하다. 별일 없이 잘 다녀오면 좋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두서없는 글이지만 그런 거 다 신경 쓰면 지난 1년과 같아진다. 글 발행을 하나도 못 하게 되겠지.. 그러니 참아본다! 꾹 참고 발행 버튼을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