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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콜과 구공탄 Mar 09. 2023

이해는 되는데 미치겠다

사람, 난감, 그리고 소통

 이해는 되는데 미치겠다는 느낌을 경험한 적 있는가? 상대방의 입장과 상황을 모르겠는바 아니고,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느끼면서도 나의 이익이나 형편에 영향을 주는 상황이 동시에 연출될 때. 이때 나는 '이해는 되는데 미치겠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내가 사는 도시에 유례없는 홍수가 지난 1월말에 났다. 대도시에서 일어난 자연재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사상자가 꽤 많은 편이었다. 피해규모는 현재까지도 복구가 안 될 정도다. 복구 비용은 해외에 원조 요청을 해야 할 수준이다. 버스가 거의 잠길 정도였으니 말해 뭐할까. 가장 대표적인 피해는 역시나 집과 차였다. 풀타임 직업을 구하면서 새삼 깨닫게 된 것은 이 나라에서 (아마도 이민자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의 90% 이상은 집과 차 관련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수많은 차와 집들을 위한 복구 작업이 시작될 바로 그때쯤!! 내 차도 피해를 입었다. 사고였다. 정확히는 아내가 쇼핑몰에 주차를 하던 중 핸드폰을 하다가 그랬는지 뒤에 오던 차가 그냥 범퍼 쪽을 때려 박은 것이다. 타이밍이 어쩜 그런지!!! 작년 9월에 산 중고차의 보험 가입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 전 주까지도 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들어야 하는데 속으로 그러고만 있었다. 전적으로 나의 실수였다. 


 이 나라가 한국과 완전히 다른 것 중 하나는 업무 처리 속도다. 특히 관공서나 은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미치고 팔짝 뛴다. 아무리 바빠도 정시 퇴근이다. 정시는 무슨. 퇴근하기 10분 전이 되면 누가 봐도 아 퇴근하려고 하는구나 싶은 분위기가 조성된다. 온지 얼마 안 된 한국인에게나 낯설지 이 나라 사람들이나 오래 산 사람들은 아 내가 늦었구나 하고 돌아선다. 클로즈 타임이 10분이나 남았는데 말이다. 이런 업무 속도와 근무 마인드가 장착된 나라에 홍수가 터졌다. 모든 집과 차들이 말 그대로 작살났다. 불난 호떡집처럼 가장 바쁜 건 보험회사다. 전화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미 공지가 떠있다. 


"날씨의 영향으로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문의량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처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내 차를 박은 중국인은 다행히 빨리 보험 처리를 신청하였다. 나의 연락에도 답을 잘 해주었다. 문제는... 보험 회사였다. 오늘이 사고 난지 딱 한 달 되는 날이다. 몇 번씩 전화 연락도 해보고, 페메로 연락을 취해보았다. 하지만 그저...


 "클레임 팀에 고객님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연락을 드리겠지만, 홍수로 인한 여파로 평소와는 비교도 안 되는 고객들의 문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한 달을 기다렸고, 아직 전화 한 통 받지 못 했고, 심지어 내가 문의한 것들에 대한 답변도 받지 못 했다. 피해자는 나인데, 전전긍긍은 나의 몫일뿐. 


 이해는 되는데 미치겠다. 딱 이 말 뿐이다. 이미 홍수 피해를 입은 농가와 가정들과 둥둥 떠다니는 차들을 많이 보아왔다. 나야 범퍼 찌그러진 차주이지만, 그들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정신적, 재정적 피해를 입은 수재민들이다. 그러니 보험회사의 일들이 얼마나 많을지 짐작이 되고, 그래서 이해가 된다. 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그럴 수 있겠다고 위로한다. 그렇지만... 미치겠다^^;; 다음 주면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갔다 와야 하는데 그 전에 아무런 조치도 없이, 연락 한 번 받지 못 한 채 즐거운 마음으로 고향을 다녀올 수 있겠는가 말이다. 다시 전화도 해보고, 메시지도 남기지만, 현재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사고를 낸 중국인에게 연락해도 그도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다. 밤에 침대에 누워서도 잠은 안 자고 어떻게 해야할지, 뭐라고 말을 해야 좀 더 빨리 조치를 취하도록 만들 수 있을지만 생각하게 된다. 안 그래도 쫀다고 일을 더 하는 애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면의 밤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해는 되는데 미치겠다는 마음에는 몇 가지 들여다 볼 것들이 있다. 계속 피해를 당하는 것은 싫은 내 상황에 대한 인식과 나보다 더 큰 피해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에 대해 안 됐다는 싶은 공감되는 마음의 대립. 살면서 분명히 빼박진리라고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보통의 인간이라면 나의 감기를 옆사람의 코로나 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것을 때로는 이기적이다, 때로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말하지만,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의 이야기인가에 따라 그 관점은 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고백하니 그냥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 회사 시절, 성과를 위해 엄청 푸시하던 나와 친했던 팀장님. 나와 당신이 함께 알고 있는 사람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나한테 뒷담화로 푸는 당신. 정말 정성들여 한 음식이 평소랑 달리 너무 짠데 아내에게 참 뭐라 코멘트하기 애매한 나. 


 어쩔 줄 모를 때,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 할 때, 이해는 되는데 미치겠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지금 나는 그저 순리에 따르는 것이 현재로서 최선이라 생각하며 기다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순리라는게 그저 기다리거나 방관하는 것만은 아닌 것은 분명하기에 어떤 상황에서 순리를 따른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최선을 다하고, 사방팔방으로 알아보고 뛰어다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거기까지며, 그 다음은 인내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를 따르는 것일까? 갑자기 보험회사 직원이 페메로 답한 이틀 전의 답장을 곰곰이 읽어보게 된다. 


"Really sorry for the long wait... The number of messages that we’re receiving is higher than usual, so it’s taking us a little longer to respond, but we’re working hard to help each customer and answer all queries as soon as we can." 


 그가 남긴 a little longer가 유난히 반어적으로 느껴진다. 배고플 때, 라면 끓는 3분이 이렇게 길었나 싶은 수준을 넘어설만큼 반어적이다. much much longerㅠㅠ 이번 사건(?)을 통해서도 배우는게 있을텐데 지금으로서는 차 보험은 꼭 들어야 한다는 것과 한 달이 일 년 같다는 것 말곤 떠오르는게 없다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젯밤에 본 유튜브 영상 속 메시지 하나를 떠올려본다. 


변화와 성장은 언제나 한계점에서 이루어진다. 

 말장난 하나 하자면, 이해는 되는데 미치겠는 상황도 일종의 한계점이다. 한계라는 것은 그 이상 갈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니까. 차사고와 보험 처리 과정으로 시작하였지만, 사람 사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상대가 이해는 되지만, 내 것도 포기할 수 없는 상황만큼 절박하고, 자주 겪는 한계점은 예외없이 누구에게나 생긴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도 그 한계점의 시간들이 들이닥쳤을 뿐이다. 그래서 단순 차사고와 언젠가 받을 보험 처리의 시간도 한계점으로 본다면, 우리 중 누구도 매일 매순간 한계점 주변을 서성거리지 않는 사람은 없겠다. 그리고 그 서성거림이 조금 지나면 정체된 나 자신, 변화된 나 자신 둘 중 하나를 마주하게 되겠다.  


 그나저나.. 내 차는 언제 수리 들어 갈 수 있으려나? 에휴...


20230309 12:04



사진: UnsplashCindy T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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