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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콜과 구공탄 Mar 08. 2023

한 번 든 물은 빼기가 어렵다

사람, 습관, 그리고 소통

 나는 군대를 가지 못 했다. 내가 앓고 있는 질환이 병역 면제 사유 중에 속해 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신체검사에서 1급을 받은 후, 영장을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재검 통지서가 날라왔다. 어찌 된 영문인가 싶을 새도 없이 재검을 받았다. 살면서 처음 들어본 용어로 나의 신검 결과를 받아들었다. 제5 국민역. 세상 돌아가는 일과 주변에 아무 관심이 없던 20살 내게 그 말은 외계어였다. 군대는 가는 거 아니면 안 가는거 아닌가?(그때는 의가사제대는 커녕 면제도 몰랐다) 알고 보니 군대가 나를 거부했다. 군대에 가고 싶었다. 아니, 꼭 가려고 했다. 1급이 나왔을 때, 키가 큰 편이라 헌병대를 가는건가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늘 형이 일부러 살을 찌워 병역을 피했다고 하시며 한탄하셨다. 지금은 폐지된 것으로 알고 있는 병역법 일부를 90년대 초반에 형이 이용했다는 말씀이셨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건아가 군대에 가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 요즘 아이들은 군대를 가지 않는 것을 고등학교 시절 목표로 삼을만큼 기피하는 경향이다. 반면에, 90년대에는 군대를 가는 것이 사람 구실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때도 군대 가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엄청 존재했다. 시간 낭비에, 힘들고, 부질 없는 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군대 갔다와야 사람이 된다는 두 파로 갈렸던 시기였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일단 정상적인 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보통의 남자들은 모두 자신들의 군바리 시절 얘기에 폭발적으로 반응한다. 악에 받쳐서든, 빛나는 시절이었든, 그만큼 강렬한 추억이리라. 아버지도 둘째 아들만큼은 장남과 달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만기 전역한 건강한 예비역으로 살기를 바랬던 것이겠다. 그런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고, 내 스스로가 건강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표본으로 삼고자 나는 군대를 갈망했지만, 끝끝내 나는 거부되었고, 지금도 어딘가 한국 남자들이 모여 의례껏 입에서 군대 얘기가 터져나올 때면 나는 그저 경청을 잘 해주는 중년 남성이 될 뿐이다. 


 이런 군대를 자랑스럽게(?) 갔다 온 사람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군바리 물과 사회 물. 전역한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사회에 동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다나까’ 말투나 세탁물을 강박적으로 각 잡아 갠다든지, ‘전방 몇 시 방향’과 같이 생활에서 잘 쓰지 않는 용어들이 있다. 군기가 잡혀있다고 하지 않나? 짧게는 18개월에서 길게는 36개월까지 같이 먹고 자고, 훈련 받고, 전시를 대비하는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습관이 어찌 그리 쉽게 바뀔까? 그만큼 물 빼기는 어렵다. 한 번 든 물은 잘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노는 물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소제목을 ‘습관’이라고 해놓았지만, 어감이 살지 않는다. 물이다, 물!! 노는 물, 군대 물, 사회 물. 일종의 비속어이기도 하지만, 짜장면이 자장면이 됐을 때만큼이나 물에 비해 습관이 주는 어감은 흐릿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 물이라... 날 것 그대로 훅 들어오는 기가 막힌 표현이다. 


 나는 지난 5년 간 외국에서 거의 같은 물에서 놀았다. 그곳에서는 늘 예의를 차려야 했고, 사람들에게 웃으며 대하려고 애써야 했다. 그런 가면(?) 놀이가 성행하던 곳인만큼, 뒷담화 문화가 빼어나게 발달된 곳이기도 하다. 내가 그 뒷담화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 더 가면을 써야했다. 그러다가 그곳을 빠져(?) 나왔다. 그런데 예상치 못 한 상황에 맞닥뜨렸다. 인식도 못 하고 있을 정도로 그곳에서 빼지 못 한 물을 질질 흘리고 다니는게 아닌가? 전혀 몰랐다. 얼마 전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고, 긴장하며 사람을 대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도 나는 여전히 예전 그 물에 있는 것처럼 달라진 물에서 행동하고, 말하고, 눈치 보고 있었다.


뭐지? 왜 이러고 있지?


 제대로, 푹, 물든 것이었다. 5년이란 시간을 지나며 내 몸과 마음에 체화된 그곳에서의 습관들이 나를 물들인 것이었다. 물드는 것은 염색이다. 일단 염색이 되면, 지우기가 매우 힘들다. 특수용품을 사용해도 얼룩이 남거나 더 더러워지는 경우를 위해 그냥 놔두거나 심지어 버려야 할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은 옷이나 면과는 또 다르다. 더 복잡하다. 분명히 나는 물들었지만, 물든 내 마음에 특수용품을 사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희석시킬 수야 있겠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니 결국은... 안고 가는 수 밖에. 갓 전역한 군인이 면접장에서 다나까로 대답했지만, 취직 후 말투가 사회동화적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처럼. 


 어쩌면 40대 중반의 나이가 된 나를 구성하는 것은 그 시간 동안 켜켜이 쌓인 얼룩들의 집합이겠다. 예쁘게 든 물도 있고, 어수룩하게 지워서 번져 남들이 보기 싫어할 물도 있고, 나만이 알게 들어버린 비밀의 물도 있으리라. 오늘도, 내일도 나는 물들며 살 것이다. 그렇게 들어버린 물을 어떻게 내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갈까? 선택지는 줄어들고, 조건의 제약은 늘어가는 40대의 내가 능동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영역이다. 


 내가 든 물은 무엇일까? 나는 그 물을 어떻게 안고갈까? 


20230308 12:15




*사진 : UnsplashStep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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