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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콜과 구공탄 May 08. 2023

강박을 병으로만 본 꼴 같잖은 나를 반성한다

사람, 소신&고집, 그리고 소통

 어린 시절은 그렇고 그랬다. 또래보다 머리 하나가 더 높았던 큰 키 외에에는 말수도 없었고, 어디 하나 나서는 적도 없었다. 친구들 다 미팅 갈 때 부끄러워서 집에 있었다. 친구들 술 먹으러 갈 때, 전에 맛 봤던 특유의 쓴맛에 질려버려 지금까지도 술을 마시지 않는다.그럼 내 친구들이 그렇게 놀 때, 나는 뭘 했을까? 멍 때렸다.그냥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는 왜 이런 환경에서 개고생할까?‘
 ‘공부해봐야 무슨 소용있을까?’
 ‘다들 즐거운데, 나만 왜 이렇게 우울하지?‘


 등이 어린 시절 나로 사로 잡고 있던 질문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뜬금없이 ‘강박’의 길을 강압적으로 가게 되었다. 나을 수 없는(문제는 겉보기에는 멀쩡하다ㅠㅠ) 지병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병이 영향을 미치지 않을 만큼만 모든 생활을 통제해야만 했다. 지금 그 시절의 기억들은 없지만, 감정만큼은 또렷이 남아있다. 하고 싶었던 운동을 포기해야 했고, 밤늦게 놀러 나가면 안 됐고, 당시로서는 당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아침 저녁에 복용해야 하는 약들이 그랬다. 지금이야 필요했던 시간들이었겠거니 하며 지나간 내 모습을 위로하고 말지만, 그때는 불만과 원망과 절망으로 가득 찬 다이나마이트였다. 20대가 되고, 30대가 되며 그런 내 모습을 받아들이면서 나라는 사람을 특징지을 수 있는 한 가지 요소도 갖게 되었다.


 강박


 약을 먹지 않으면 아무 일이 없어도 무슨 일인가 생길 것 같은 느낌 속에서 30년을 살아다. 밤 늦게 돌아다니며 객사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으로 최대한 밤에 놀러 다니는 것은 자제하며 청년 시절을 보냈다. 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상태, 내게 강박은 그런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런 모습은 불거져나왔다.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상대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썼고, 그렇게 해서 예상 밖의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늘 애썼다. 갈등을 초기 진압하는 기민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지 못 했다. 아니 될 수 없었다. 갈등은 절대 일어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일단 갈등이나 문제가 발생하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될 거라는 강한, 하지만 잘못된 믿음이 나를 꽉 잡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여러 부분에서 (원하지 않았지만) 어려움을 겪으면서 나도 바뀌어 갔다. 좀 더 적응적이고, 사회적인 인간으로 변모했고, 빠지지 않은 (분노의) 김을 조심스레 뺄 줄도 아는 유도리 있는 인간이 되어왔다. 그렇게 살아온 내가 한 달 전 쯤 우연히 한 권의 책을 접하고서는 이전까지 내 모습이 어쩔수 없이 내가 지나야 했던 시기였을지는 몰라도, 내가 한참이나 오해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혹시 이 책을 들어보신 적이 있는가? 흔한 자기계발서 부류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의 이름을 들으면 그런 생각은 싹 달아난다.


 손웅정


 엄청 거창하게 들리는 이 책소개를 행여나, 혹시나, 그럴 일 없겠지만 손 감독께서 접하신다면, 손사래를 치며 강하게 부정하시리라. 그간 보여왔던 인터뷰에서의 모습들이나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의 자세는 그분의 반응을 쉬이 예상할 수 있게 해준다. 손 감독께서 책을 쓰신 지도 몰랐고, 그의 책을 읽게 될 줄도 몰랐고, 무엇보다 그의 책이 내 손과 눈과 귀와 머리에 이토록 흥미롭게 다가올 줄 몰랐다. 출판사의 힘인가 생각하다가도 그의 단순명료한 강박은 병적으로 치우친 나의 강박을 힘있게 압도했다. 무엇보다, ‘손흥민’이라는 이름 석자가 그의 강박이 소신과 신념의 다른 모습일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을 절반 정도 읽었을때,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런 반성 비스무리한 자책이 올라왔다.


강박을 병으로만 본 꼴 같잖은 나를 반성한다.


 미치도록 열심히, 말도 안 되게 일관된 길을 가는 손 감독의 삶에는 텍스트와 인터뷰 영상들만으로는 절대 전달될 수 없는 그만의 강박이 있다. 꿈보다 해몽이더라도 그 강박의 부분에서 나는 그와 맞닿아 있었다.


 ‘흥민이의 기본기를 채우기 위해 7년의 시간이 걸렸다. 365일 쉬지 않았다. 방학 때 친척집에 놀러 가는 일도 없었다. 하루를 쉬면 본인이 알고 이틀을 쉬면 가족이 알고 사흘을 쉬면 관객이 안다는 말처럼, 죽을 때까지 놓지 말아야 하는 가치는 ’겸손‘과 ’성실‘이다… 내가 하는 프로그램은 다른 곳보다 기본기에만 두 배, 세 배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기본기라는 건 3~4년 해서 될 게 아닌데 요즘 보면 6개월 정도 운동하고 기본기를 마쳤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도, 가능할 수도 없는 일이다.’(p. 121, <반복의 힘> 중에서)


 어떤 일을 이해한다는 것은 비슷한 상식선에 있는 사람들 간에나 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손 감독은 훈련 방식과 그 우선순위에 있어서 일반적인 방식에 담긴 상식과 맞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뭐랄까. 손 감독의 훈련 방식과 축구에 대한 가치관을 텍스트로 계속 따라가다보면 읽는 나도 뭔가 치열해진다. 몸에 힘이 들어가고 집중하고 있음을 느낀다. 나를 모르는 손 감독의 정서와 가치관이 나라는 사람의 상식과 연결되고 있었음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그렇지 하다가도 아,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싶지만, 결국은 그의 논리에 두 손 두 발을 들고, 동의하게 된다. 아, 강박이 이렇게 멋있어도 되는 것인가?


 책을 읽으며 안 사실인데, 손흥민 선수는 중학교 때가 되서야 공식적인 축구부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철저히 아버지 손 감독의 지도 아래 기본기만 훈련한 것이다. 해당 챕터의 제목처럼 반복의 힘이란 어마무시하다.  태어난 아이가 똥오줌을 가리는 것도, 유치원 다니기 시작한 어린이들이 젓가락질을 제대로 하게 되는 것도, 죽도록 일어나기 싫어도 일정 시간이 되면 일어나 학교를 가는 (한국의 대단한) 청소년들도, 오늘도 자기 책임을 다 하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 청년들도 반복의 힘으러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얼마나 지겨울까? 7년의 시간. 수영장 가고, 수박 깨먹기 좋았던 어린 시절의 방학을 고작 10살 전후의 아이가 훈련을 위해 반납하고, 쉬면 쉬는대로 그것을 메꾸기 위해 더 뛰고, 더 차고 한다는 것은 말이 좋아 반복의 힘이지 본인에게는 그저 지겨운 일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손흥민 선수 본인이 좋고, 원해서 한 일이라고 해도 그 훈련의 시간들이 주는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인 손 감독은 어땠을까? 마냥 매일 반복되는 훈련의 시간들에 아들들이 성장하고 있다고 기뻐만 했을까? 행복한 축구라는 불변의 목표가 있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결국은 아들을 훈련의 길로 내몰지 않으면 안 되는 모습은 그만의 강박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 손 감독의 강박이 부러워던 것 같다. 손 선수를 훈련시킬 때만 해도, 그가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이 될지, 손흥민 존에서의 무시무시한 양발 킥의 위력을 전 세계에 보여줄지, 그 유명한 손차박 대전으로 한국 레전드 선수들과 나란히 할 줄 그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정확하게는, 책으로 내가 접한 손 감독이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이게 좀 더 적합한 표현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손 감독의 강박을 굽히지 않는 소신으로 본다. 그의 강박이 때로는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상식 밖의 것으로 보일지라도, 그의 강박은 소신으로 많은 축구 선수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선한 영향력 말이다. 기부하거나 자원봉사 다니는 것도 선한 영향력이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에서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거북할 정도의 강박으로 소신을 실행하고 있다면, 그 또한 선한 영향력이라고 믿고 싶다. 손 감독의 그 소신이 조금씩이라도 운동 선수와 그들의 훈련체계, 시스템 등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실제로 그 결과를 낳고 있다는 점이 설득력을 더 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내 운동을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서점에 나와 있는 ’축구‘ 관련 책이란 책은 다 찾아 읽었다. 축구에 필요한 근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헬스‘ 관련 책들도 안 읽은 게 없다… 적어도 나라는 사람에게 책은 단순한 유희의 도구가 아니라 절실한 생존의 도구였다… 내가 책을 읽는 방법은 부끄럽지만 유별나다… 종잇장이 뚫릴 만큼 박박 줄 치고 여백에 빼곡하게 메모를 해둔 책은 독서노트 작성이 끝나면 바로 버린다… 시간이 나라 때마다 독서노트도 반복해서 읽다 보면, 비로소 내 안에 기억의 궁전이 세워진다.‘(p. 137~139, <무식한 자의 독서법> 중에서) - 독서법


 그렇지 않아도 해외 생활을 하는 사람의 책장에 이렇게까지 책이 많아도 되는가를 고민하던 찰나였다. 아마 손 감독의 독서관에 대한 구절을 읽고, 책에 대한 고민이 무장해제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4년만에 간 한국에서 책은 딱 3권만 사자라는 결심으로 갔다. 하지만 손 감독의 태도는 나를 용감하게 만들었다. 거의 20권에 가까운 책들을 다양하게도 사들고 비행기를 타고 끙끙거리며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열심히 읽고, 대차게 버리면 되지^^ 물론, 미안한 마음에 무거운 짐은 죄다 내가 들었다ㅎㅎ


 말 그대로 손 감독의 독서법을 통해 나도 책을 버려보기로 했다. 그만큼 너덜너덜하게 읽을 수 있을까 싶은 의구심 한 움큼을 마음 한 켠에 두고서. 이전까지 나도 나름의 책 읽는 루틴? 같은 것들을 쭈욱 진화시켜왔다. 기본적인 줄긋기나 형광펜 사용부터 단락 옆에 메모 남기기, 아예 노트를 만들어서 새책처럼 책 읽기, 중요 구절 사진찍기를 거쳐 지금은 애플의 기술을 빌려 텍스트 스캔 기술을 활용한 독서 메모 남기기 까지. 쓰다보니 이런 나의 독서 방식에도 강박이 느껴진다ㅎㅎ 하지만, 이상하게 나를 압도하는 손 감독의 독서 집념에는 못 미치는 듯 하다. 책 곳곳에 그의 소신과 집념이 강박적으로 묻어난다. 하물며 자신의 독서법을 이야기하는 장에서 오죽하랴. 읽다가도 약간의 흠칫거림이 있기도 했다. 그런 그의 아들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빛나는, 행복한 축구 선수 손흥민이라는게 언뜻 매치가 안 되니 말이다.


 앞서 나온 형용사와 동사만으로도 손 감독이 어떤 분인지 아는데 도움이 되었다. ‘절실한’, ‘박박’, ‘빼곡하게’, ‘바로 버린다’ ‘기억의 궁전’.


  책은 평소의 나라면 절대 경험해보지 못 했을, 만나보기 어려웠을 상황과 사람들을 내게 선사한다. 나는 그게 좋다.아주 가끔은 공부를 하거나 입시의 목적으로 책을 읽은 적도 있지만, 5%나 될까. 궁긍한데, 내가 알 기회가 없었던 영역을 다룰 수록 나를 더 미치게 만든다. 이 또한 강박의 영역이겠다. 그리고 이 글에 ‘강박’을 자꾸 연관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것도 나의 ’강박‘이리라ㅋㅋ


마지막으로, 손웅정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책을 덮는 그 순간까지도 이해되지 않는 점은 있었다는 것.


“감격스럽고 기뻐하고 기록해야 할 그날, 내가 가장 원했던 것은 흥민이가 그것을 잊는 것이었다.”(p.157)


 데뷔골을 터뜨리고, 중요한 순간에 극적인 골을 터뜨린 세계적인 선수인 아들에게 스승이자 아버지가 바랐던 것은 그 또한 잊는 것이었다는 것. 누릴 수 있는 약간의 시간만 주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드는 지금 이 순간, 나라는 사람의 강박은 역시나 손 감독의 그것과 클라스가 다른 것이겠지.


 앞으로 나는 강박적으로 책을 읽고, 강박적으로 책을 버려보려고 한다. 다만, 그의 스타일만큼이나 단순하지만 굽히지 않는 소신이 흠뻑 담긴 그의 책 제목에서 풍기는 아우라는 불타지 않는 이상 이 책을 버릴 수 없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반성한다.


 강박을 병으로만 본 꼴 같잖은 나를 반성한다. 어떤 강박과 함께 살아야 할 것인가를 구별하자.


20230420 19:54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 20230508 17:22 돌아온 집에서


* 사진 : Photo by <a href="https://unsplash.com/@towfiqu999999?utm_source=unsplash&utm_medium=referral&utm_content=creditCopyText">Towfiqu barbhuiya</a> on <a href="https://unsplash.com/s/photos/belief?utm_source=unsplash&utm_medium=referral&utm_content=creditCopyText">Unsplas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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