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을 읽고
이 책을 쓴 정세랑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어본다.
천천히 ‘심시선’의 시선이 담긴 그녀의 문장으로 모든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글들은 그녀의 인생을 그리고 생각을 품는다. 안에 담긴 그 글을 바깥에 있는 우리가 읽으며 우리는 많은 것들을 그녀와 호흡하고 느끼게 된다. 마치 내가 다사다난하지만 끝없이 아름다웠던 그녀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 그녀와 함께 하고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20세기를 살아가며 그녀가 겪었던 많은 감정들과 상황들은 그의 후손들에게는 이제 한 언어로 정의되기도 하며, 모호하고 애매한 경계에 있던 것들을 다시 그들만의 언어로 재현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시선에서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이제는 심시선이 떠난 빈자리를 메꾸며 그녀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글을 읽는 내내 들었던 감정은, 놀랍게도 낯설음이었다. 한국 사회에 감도는 흐릿하고 날카로운 공기의 흐름을 여전히 내가 느끼고 있다는 반증일뿐더러 심시선의 글들이, 그리고 책 안의 인물들은 그 흐름을 더 이상 느끼지 않고 해소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그녀가 남기고 간 모든 것들의 자화상, 당신의 자손들이다. 시선이 남기려고 했던 모든 것들은 이제 보석처럼 하나씩 그녀의 딸들과 아들, 손녀들과 손자에게 전해졌고 그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심시선이 남긴 시선(視線)으로 세상을 빛내며 살아내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 역시 그 시선을 접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소화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시선이 떠난 10년 만에 처음으로 큰 딸이 주도한, 하와이에서 열린 제사에서 그녀의 자식들은 정형화된 방식으로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음식을 올리고 그녀에게 절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하와이에서 머물며 그들이 즐기는 방식으로 시선이 하늘에서 보면 좋아할 것들을 담는다. 그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것, 직업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많은 답을 찾는다. 하와이가 남긴 시선의 흔적들을 좇기도 하고 평생 도전해보고 싶던 모험을 통해 그들만의 가치를 찾는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부분은 우윤의 부분이었다. 어릴 때 죽음의 공포를 겪은 후 그녀가 살아온 삶에 대해, 그리고 그녀가 마주친 파도는 이제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대한 다짐이자 하나의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녀는 완전히 또 다른 세상을 만들 것임이 분명하다.
어두운 하늘에도 밝은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바다에서 떠밀려온 유리들로 귀걸이와 목걸이를 만드는 것처럼 우리 사회도 점차 밝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긴다.
시선이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남긴 시선(視線)의 가치는 마음속 안에 잔잔하게 남는다.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 시선으로부터, 33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