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안미옥 / 「여름잠」
❝어느 날, 햇살이 좋고 바람이 선선한 날 버스의 가장 앞자리에 탄 날이 있었다.
당시에 가장 빠져있던 노래를 틀고 이마에 비추는 햇살을 느끼며 버스 창밖 빠르게 지나가는 나무를 바라보았다. 이제 막 싹이 나려는 새싹들, 그것들은 아픔이나 슬픔을 모르는 양 싱그럽고 밝다. 귀에 들리는 노랫소리로 묻혀버릴 창문 밖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들은 모두 행복하고 즐거워 보였다. 나는 그런 순간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지만 가장 특별한 순간❞
2020년 3월에 남겨놓은 메모장의 글을 보았다. 당시의 나는 마지막 줄에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지만’이라고 적어놓았는데 그 문장은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여느 때와 같지 않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던 듯싶다.
고작 3년이 흘렀을 뿐인데 많은 것이 변했다. 주위의 풍경도, 사람도 그리고 마음도.
강변에 나비가 돌아왔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저것은 세계가 변하는 일이다
- 「나비가 돌아왔다」 전문, 이시영 / 문학과지성사
시집을 하나 보게 되었다.
원체 나비를 좋아해서 제목을 보고 펼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비를 좋아하는 이유는 날갯짓을 통해 자신을 증명해 내기 때문이다. 그곳이 비가 온다면 날개가 젖지 않기 위해 잠시 마른 곳에서 쉴 수도, 몸을 웅크린 채 조금은 기다릴 수도 있다.
그러다 해가 떠오르면 작고 여리지만 강한 날갯짓으로 햇살을 온전히 받으며 날아오를 수 있는 힘이 있다.
‘나날이 폭력성을 더해가는 문명 세계에서 순수의 회복을 바라며 작은 희망의 날개로 세계의 변화를 만들어 가는 나비의 노래.’
그런 나비의 노래가 이곳으로 돌아왔다.
살아가며 마주치는 몸과 마음이 기진한 상태. 그런 상태에 시를 떠올리곤 했다는 시인의 말은 지금의 나에게도 많은 힘을 주었다.
싫은 게 너무 많던 어린 날의 나는 단정한 스물다섯이 되었지만 소중했던 사람들이 떠나가는 세계를 마주쳤다.
차가운 바닥에서 천천히 말라간 것들에 대해 기억한다
일기장에 빼곡히 적은 검은 마음들을 기억한다
개미와 지구에 대해 기억한다
미숙하고 어린 세계에선 기억하는 것이 전부를 말한다.
여름잠
아주 열린 문. 도무지 닫히지 않는 문.
나는 자꾸 녹이 슬고 뒤틀려 맞추려 해도 맞춰지지 않았던 내 방 문틀을 생각하게 돼. 아무리 닫아도 안이 훤히 보이는 방, 작은 조각의 침묵도 허락되지 않던 시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아주 사적인 시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그러고 싶지 않아서.
네 문을 닫아보려고 했어, 가까이 가면 닫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비틀어진 틈으로 얼굴을 밀어 넣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게 되었어.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네가 가진 것은 모두 문밖에 나와 있었고, 나는 그게 믿어지지 않아서 믿지 않으려 했다.
춥고 서러울 때, 꿀 병에 담긴 벌집 조각을 입안에 넣었을 때, 달콤하고 따듯했어. 꿀이 다 녹고 벌집도 녹았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 녹아도 더는 녹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있는 거야. 하얗고 끈끈한 껌 같은 것이. 그런 밀랍으로 만든 문, 네가 가진 문은 그런 것 같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검은 돌. 네가 준 돌을 볼 때마다 단 것이 떠올라. 돌은 겹겹이 쌓인 문이고, 돌 안에 켜질 초를 생각한다. 내내 초를 켜려는 사람이 있었다. 초를 켜면 문이 다 녹는데, 자꾸만 그것을 하려는 너에게. 나는 조언을 해. 그건 다 내게 하는 말이야. 모두 나 자신에게 하는 말들뿐이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
잠시 죽었다가 깨어나는 삶과 죽었다가 잠시 깨어나는 삶. 둘 중 무엇을 선택하겠냐고 물었다. 나는 죽었다가 잠시 깨어나 있는 것이면 좋겠다. 어디서부터 시작이고 어디까지가 끝인지 알 수 없어서 자꾸 깨어나는 것 같아. 마지막 인사는 마지막에 하는 인사가 아니라 마지막이 올 때까지 하는 인사일까.
따듯한 물로 손을 씻을 때마다 네 생각이 난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일들은 마음에 오래 남는다고 하더라.
안녕, 잘 지내. 여름을 잘 보내.
- 안미옥,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