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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비 Dec 05. 2022

마음엔 햇살도 비도 필요한 법이니까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백수린 에세이


시시각각 모습과 색을 바꾸는 구름처럼 내 마음도 시도 때도 없이 변한다.

더없이 아름다운 행복으로 물들 때도, 한없이 슬프고 우울해 가라앉을 때도 많다.


며칠 전, 작고 여린 다리를 2번이나 수술한 반려견 호두에게 또 다른 병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소중한 존재의 맑은 눈과 복슬복슬한 털이 생각나 몰래 조금 울었던 날이 있다.

내가 있으면 집에서 계속 뛰어다니는 통에 걱정되는 마음 한가득을 품고도 본가에 가지 못하고 서울 자취방에 무력하게 있어야 했던 그날의 내가 너무 답답해 서울 근교 호수공원을 찾아 혼자 계속- 계속 걸었던 날이다.


느지막한 오후의 달이 하얗게 빛나고 아직은 구름의 입체감이 선명하게 하늘을 메꾸고 있었다.

호수를 걸으며 영상통화로 넓은 호수를 호두에게 보여줬다. 맑고 큰 눈에 시원한 호수가 다 담겼으면 좋겠는데 많이 아픈지 아쉽게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오랜만에 듣는 누나의 목소리에도 반응하지 않고 힘없이 떨군 목을 부드럽게 안아주고 싶었다.


미련 가득하게 전화를 끊고 호수를 걷다 보니 신기한 장면들을 많이 봤다. 공항과 가까운 호수여서 그런지 비행기들이 많이 날아오고 또 날아왔다.


내 눈에 담기는 달과 구름, 하늘은 그대로인데 비행기가 달 쪽으로 서서히 작아지더니 구름 안의 점이 되어 가는 모습들. 마치 아주 처음부터, 아예 없었다는 듯이 사라진 커다란 쇠 덩어리는 폭신해 보이는 구름의 일부분이 되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만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주 크고 무거운 것이 마음에 들어와 흔드는 일이 있어도 내 마음이 그만큼을 품을 수 있다면 나는 결국 내가 된다는 것. 어느 순간 점이 되어 무겁고 어려운 것은 지나가고 다시금 제 색을 찾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구름처럼 그렇게 내가 된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아주 작은 것이 마음을 흔들 때가 있다. 아주 작은 것이 일상의 균열을 가져올 때처럼.

비가 내리고 눈이 내려 하늘을 쳐다볼 힘이 없을 때 나는 매일 착각하곤 한다. 하늘엔 아무것도 없고 보이지 않는다고. 오로지 어둠만이 있다고. 그러나 기억해두어야 할 것은 그들은 그리고 구름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흐리고 어두운 감정에 선명하게 보이지 않을 뿐 내 마음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마음이 들뜬 날엔 브르타뉴의 꿀을, 우울해 한없이 가라앉는 날엔 시칠리아에서 온 꿀을 한 숟가락 먹고 싶다. 마음엔 햇살도 비도 필요한 법이니까.' -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56면


작고 소중한, 아름다운 우리 가족의 반려견 호두에게 말해주고 싶다.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느끼게 해 줘서 고맙다고, 힘든 시기가 지나가면 더없이 기쁘고 행복한 하루가 다시 펼쳐질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어째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죄다 하찮고 세상의 눈으로 보면 쓸모없는 것들 뿐인 걸까. 하지만 이제 나는 쓸모없는 것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촘촘한 결로 세분되는 행복의 감각들을 기억하며 살고 싶다. 결국은 그런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할 것이므로.' -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5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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