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을 읽고
수많은 긴긴밤을 함께했으니 ‘우리’라고 불리는 것은 당연했다.
차가운 세계 속에서 따뜻한 마음을 선물한 노든이 그립다.
노든은 코뿔소다. 수많은 코끼리들 사이에서, 아버지들 사이에서 자신은 훌륭한 코끼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에게도 결정의 시간이 다가온다. 안전한 그곳을 떠나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위험하고 신비한 그 세계로 한 발짝 용기를 낸다.
그 세계에서 노든은 자신을 보듬어 준 소중한 인연들을 잃는다. 자연의 삶에 서툰 그를 이끌어주던 아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딸이 인간의 총에 맞는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욕심으로 처참히 짓밟힌 존재들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아내와 딸을 잃고 인간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 노든에게 여전히 세계는 냉정하고 차갑다. 가혹하고 어둡다. 그럼에도 노든은 그 차가운 밤 사이에서 또 다른 사랑의 연대를 쌓는다. 평생 동물원 안에만 있었다는 친구 앙가부를 만나 조금씩 삶에 대한 희망이 움트는 것을 느끼며 새로운 삶을 기대하지만 한번 더, 그 새싹은 무참히 뽑힌다. 결국 그의 곁에 남은 건 작은 알과 펭귄 치쿠.
그들은 어느샌가 수많은 긴긴밤을 함께 보내며 '우리'가 된다. 아빠가 된다는 경험은 얼마나 소중하고 경이로운 것인지 듣고, 또 들으며 그들은 보이지 않는 바다로 향한다. 푸른 바다를 꿈꾸며 끝없는 초원을 걷는다. 몸이 마르고 지쳐도 서로에게는 '우리'가 있으니. 알을 보듬겠다는 일념 하에 묵묵히 걷는 그들에게 보이는 투지와 사랑은 놀랍도록 강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언젠가 나도 사랑하는 어떤 것을 위해 내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기꺼이 수많은 밤들을 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 바위 코뿔소와 코뿔소 품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이 보여주는 기적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그들에겐 사랑이자 희생이고 포기이자 행복이다.
수많은 긴긴밤을 함께 한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차가운 세계 안에서 작지만 가장 강력한 사랑의 연대를 보여주어서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말이다.
제21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이 책은 내 인생 책이자 떠올리는 것만으로 울컥하고 단단해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삶에서 지쳐 조금씩 차가워지는 세계가 두려울 때 이 책을 펼친다. 까만 밤하늘에 별들이 가득 떠있어 더없이 밝은 밤이 되고, 그 밝은 밤은 다시금 내가 이 추운 세계에서 안온한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하는 묵직한 감정이 된다.
세상에 하나 남은 흰 바위 코뿔소 노든, 그를 보듬어 준 코끼리.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는 펭귄 치쿠와 그의 오른 눈이 되어준 친구 웜보, 이야기를 들어주며 또 하나의 새싹을 선물한 코뿔소 앙가부. 그리고 결국 그 모든 사랑을 받아 푸른 바다를 향해 나아간, 삶의 의미를 찾은 '나'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