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1: 서울편(3)> 서평
나의 큰이모부는 이야기꾼이셨다. 초등학생도 안 되었던 때부터 나를 당신의 옆자리에 앉혀놓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셨었다. 그 이야기는 한국사, 세계사 등의 역사부터 현재의 정치까지 스펙트럼이 넓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 하나는 네루의 <세계사 편력>에 대해 이야기해주신 것이었다. 역사를 잘 알고 싶고,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보고 싶으면 이 책을 읽으라고 추천해주시면서, 네루가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아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들려주셨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인도인인 네루는 옥중에서 쓴 서신에 세계사를 기록했는데, 이는 서구의 시각이 아닌 제 3세계의 시각으로 본 세계사라는 것이었다.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으로 쓰여진 서신이 세계사 책으로 엮어져 나오게 되었다는 이 이야기가 그 어린 내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었다. 아마, 이모부가 들려주신 내용도 당연히 새롭고 신기한 면이 있었겠지만, 어떻게 우리 이모부는이런것까지 알고 계시지?하는 의문도 있었을 것 같다. 어린 내눈에는 큰이모부가 척척박사 같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 이모부가 하시는 이야기면 뭐든 재미있게 들었다. 그 내용이 사뭇 진지하고 무거웠던 것이 많았지만, 내 귀는 이야기꾼의 이야기에 팔랑거렸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1: 서울편(3)>은 큰 이무보가 내게 들려주는 그런 이야기와 많이 닮아있다. 책 속에는 서울의 역사를 여러 사료를 사진으로 설명하는 부분도 많지만,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은 온당 자신의 것으로만 여겨져야 할 경험, 생각 등도 많이 담겨있다. 마치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 같은 느낌이다. 서울 사대문 안동네의 문화유산과 그에 따른 역사들과 더불어 자신의 어렸을 적 이야기, 만났던 사람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내가 무슨 책을 읽은 것인지 혼란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서울의 문화유산에 관한 책인가, 문화재청장을 지내셨던 어떤 분의 문화재에 대한 생각인가, 서울 토박이로 오랜 시간 서울에서 사셨던 한 노인의 생각과 경험인가.. 난 무엇을 읽은거지? 그런데 내가 큰이모부 이야기를 들었던 것처럼, ‘문화재청장을 지낸 어떤 역사학자와 서울을 둘러보며 들었던 이야기를 읽었다’로 마무리가 되었다.
역사란 지루하고 따분한 것의 대명사라 불릴 만큼 그 자체만으로는 흥미롭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역사를 어떻게 전달해주는가하는 그 전달자 즉, 이야기 꾼에 따라 역사가 어떻게 다가오고 흥미진진하게 느껴질지는 매우 다른 것 같다. 어느 할아버지가 기억하고 경험한 서울 이야기 듣고 싶다면, 이 책을 들어 펼쳐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유홍준의 <내 고향 서울이야기>는 고고학(考古學)이 아니라 고현학(考現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아주 멀지 않은 가까운 과거의 이야기를 녹여내고 있는 것인데, ‘학(學)’이라는 말을 썼지만, 사실은 일상의 기록인 일기와 비슷한 느낌이다. 개인의 기억에 기대어 한 동네의 역사를 서술했던 ‘인사동’편이나 그 외의 부분들에서 나는 기록은 참 의미있다고 여겨졌다. <안네의 일기>가 안네에게는 일기였지만 후대에는 문화유산이자 많은 이들이 애독하는 책이 된 것처럼, 각 개인의 일대기도 각 개인이 기억하는 자신의 동네에 대해서도 기록해 놓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아무도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던 한 부분에 대해 이렇게 기록을 남겨두었다는 그 자체가 이 책이 가진 가치이다. 우리나라의 80-90년대 대학생활을 잘 그려낸 것으로 평가받는 신원호 감독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는 역사라 하기에는 애매모호한 비교적 최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시절 대학생이었던 사람들은 그 시간들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한 흐릿한 기억을 가지고는 있지만, 매체를 통해 생생하게 재현된 그 시절을 통해 우리는 많은 추억들을 꺼내보며 향수에 젖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었다. 자세히는 몰라도 <응답하라> 제작진도 그 시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양한 기록들을 참고해서 <응답하라>시리즈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흘러가는 일상을 기록해 둔 누군가의 자료들이 귀중하게 쓰였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사진과 영상, 글 등 어떤 매체를 통해서든 계속해서 우리네 일상을 기록하고 남겨두며 나중에 들춰볼 수 있는 자료로 저장해놓는 것은 언제가 되었든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나도 오늘 기록을 하나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