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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Feb 04. 2023

직업의 귀천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Treiman(1977)의 연구를 중심으로

최근 유재석과 조세호가 진행하는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에 타일공, 도배사 등 육체노동이 중심이 되는 블루칼라 직종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이 나왔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한때 사무직에도 종사했었던 청년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도 견디며 ‘기술직’이 되기로 결정했다는 스토리가 전파를 타고 방송되었다. 의도를 가지고 이들을 섭외했을 제작진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싶었던 것인지 생각해 봄직하다. 이와 연관 지어 가장 쉽게 떠올려 볼 수 있는 것은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말이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직업에 귀천이 없다면, 왜 사람들은 자신만의 노하우와 기술을 지닌 ‘기술직’에 종사하는 건실한 젊은이들에게 우려스러운 목소리도 내고 곱지 않은 시선도 보내는 것일까? 특정한 직업의 귀하고 천함은 논할 수 있는 바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관적으로 직업의 귀천을 판단한다. 우리의 인식 속에 어떻게 직업의 귀천이 나뉘게 되고 직업에 위계가 매겨지게 되는지 그 과정을 설명해보고자 한다. 


우리의 의식 속에는 각자가 가진 나름의 기준에 따라 직업에 대한 순서, 즉 위계를 가지고 있다. 직업 그 자체에는 위계가 없다고 할 수 있으나, 각 개인마다 나름의 기준 속에서 직업은 1등부터 100등까지 일정한 순서로 나열될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모든 사회, 즉 인종과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어 각 세계의 사람들은 비슷한 직업적 위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만 변호사, 의사의 직업적 지위가 높은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변호사, 의사의 직업적 지위는 다른 직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나라별로 직업 위계의 순서가 똑같지는 않지만 거의 유사하다는 점을 확인한 Treiman(1977)은 나라별 직업 위세(지위와 권세)를 비교하여 일정한 점수로 환산하여 순서대로 나열했다. 위세(presitge)는 ‘존중받을 수 있는 자격’으로 정의하는데(Shils, 1968), 그 직업이 얼마만큼 존경받을만한 지위와 권세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사람들은 그 직업의 위세를 판단한다. 이는 개인의 인식을 기준으로 하며, 개인의 주관적 판단을 모두 종합하여 평균을 낸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Treiman은 60개국 이상에서 진행된 직업 위세 연구들을 비교분석하여 이를 결과로 정리했는데, 각 국의 직업이 그 이름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그 직업세계의 구성이 비슷하며, 직업별로 위세도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이후 Treiman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직업위세에 대한 조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은 연구가 진행되었던 197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직업의 위세는 큰 변동이 없다는 점이다. 즉, 직업의 위세는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고 시간도 뛰어넘어서 유사하다. Treiman(1977)은 <Occupational Prestige in Comparative perspective>에서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는지 설명하고 있다. 


그전에 ‘왜 모든 사회에서 직업적 역할이 유사할까?’라는 질문에 답을 해보자면,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방식이 다 똑같기 때문이다. 이를 조금 어렵게 말하면 ‘기능적 필수요건’이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데, 한 개인과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 충족되어야 하는 요구는 모든 사회에서 동일하다. 그 요구에 따라 직업적 역할이 구성되기에 모든 사회에서 직업적 역할이 유사해지는 것이다. 이를 더 복잡한 사회에 적용해 보면, 음식, 의복, 주거 등과 관련한 역할과 더불어 다른 사회와 상품 및 서비스의 교환을 위한 메커니즘, 문화, 정치적 역할 등이 필요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한 개인 또는 한 조직이 스스로 다 해결할 수 없는 요구들이 있기에 노동의 분업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 노동의 분업은 바로 직업과 전문화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직업은 왜 위세(prestige)를 가지게 되는 것일까? 노동의 분화는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발달하는데, 이로 인해 전문적인 노동과 비전문적인 노동으로 나뉘게 된다. 직업적 능력과 숙련된 스킬을 가진 사람이 전문적인 노동을 수행하게 되면서 연령과 성별에 따른 분업을 넘어서 직업 전문화가 발전되는 것이다. 여기서 Treiman은 이해하기 쉽게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을 예시로 들어 노동의 분화와 전문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마오리족 사회는 고도로 발달되지 않았어도 직업이 전문화되어 있었다고 한다. 마오리 공동체에는 타고난 기술자와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기술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 그리고 덜 숙련된 사람들은 전문가를 돕는 역할을 하도록 구조화되어 있었다. 마오리족이 석재 제작자, 나무 조각가, 카누와 집 제작자, 문신제작자 등의 전문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회가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유럽의 도제제도 속에서도 이 같은 일은 목격할 수 있으며,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 속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 모습이다. 


노동은 이처럼 전문화와 효율성에 따라서 분화되는데, 크게 보면 두 줄기의 방향이 있다. 하나는 ‘수평적’ 분화이고 두 번째는 ‘수직적’ 분화이다. 수평적 노동 분화는 집을 짓는 일에도 목수, 석공, 배관공, 전기기사 등이 나타나듯이 같은 수준의 일이 아주 세분화하는 방향의 분업이며, 수직적 노동의 분화는 의료계 내에서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이 나타나듯이 부가가치가 더 많이 창출되는 숙련된 전문성에 따라 나타나는 분업이다. 수직적 노동 분화에서는 숙련된 전문가에게 더 높은 임금이 지불되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모든 복잡한 사회에서는 기본적으로 유사한 직업적 구성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후 노동의 분화로 인한 직업적 역할의 전문화는 특정 직업에게 희소하고 가치 있는 자원을 더 많이 통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기회의 차이는 특별한 기술 또는 소질을 가진 사람이 노동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며, 한정된 자원에 대한 권력은 시스템을 통제함으로써 특정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도록 만든다. 특권과 권력을 소유한 직업은 모든 사회에서 높게 평가되고 이는 직업 위세의 차이를 유발하게 된다. 즉, 직업에 일정한 위계질서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권력과 특권 그리고 위세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모든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가치 있게 여겨진다.  존중받는 직업의 대부분은 그들이 속한 사회의 중심부에 위치한다. 권력과 특권을 가진 직업 계층이 모든 사회에서 불변한다면, 직업적 위세와 그 위계 또한 불변할 것으로 본다. 


정리해 보면, 복잡한 사회에서의 노동 분업의 발달은 뚜렷한 직업적 역할로 특징지어지고, 직업적 역할 분화가 본질적으로는 권력, 특권의 차이를 만들어내며, 결국은 직업 위세의 차이를 발생시킨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모든 복잡한 사회는 근본적으로 유사한 직업적 위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위세는 연구가 진행되기 전부터 있었고, 이를 연구로 확인했으며, 그 이후 지금까지도 직업 위세가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큰 틀에서는 직업 위세가 변하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견하고 있다. 


연구를 통해 각자의 인식 속에는 직업의 귀천이 있고 이는 세계적으로도 비슷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어떤 직업의 위세가 높고 낮은지는 다시 연구물을 들여다봐야 알겠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특정 직업이 갖는 특정 위치가 있다. 모든 직업은 각자 나름의 쓰임이 있고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하나의 역할을 하지만 그 역할의 크기도 쓰임도 각기 다르다. 앞서 언급한 블루칼라의 기술직들을 나는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한다. 남들은 쉽게 얻을 수 없는 자신만의 기술과 지식, 전문성이 있다면 나는 그 직업의 위세를 높게 판단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렇지 못한 직업들도 많다. 비하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관적으로 판단을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직업 위세가 있다. 한번 자신이 생각하는 직업의 위세도 세어보면 흥미로울 것 같다. 


직업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이지만, 당신의 직업, 나의 직업 등 누군가에 대한 정체성을 확인하거나 부여하기 위해 사용하지, 직업의 의미나 역사 등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직업의 유사성과 그 위세의 발생 과정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직업 그 자체에 대해 한 발짝 다가가는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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