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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Jan 31. 2023

젊줌마 관점에서 본 <섹스/라이프>

아가씨에서 아줌마로의 야한 이행기.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된 대놓고 야한 드라마, 19금이 아니라 39금쯤은 되는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너무나도 야한 드라마가 보고 싶다면, 이 드라마를 강력 추천한다. 총 8화로 구성된 <섹스/라이프>는 모든 에피소드에서 다양한 섹스 장면과 실오라기 하나 없는 노출 장면을 볼 수 있다. 30대를 넘어서 두 아이가 있는 아줌마인 내게도 꽤 충격적이고 흥미진진했던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아주 많았다. 보는 사람에 따라 충격적이지 않을 수도 있으나, 나름 순진한 아줌마를 자처하는 내게는 그러했다. 


이 드라마는 빌리라는 여자 주인공이 완벽해 보이는 가정 속에서 자상한 남편과 함께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지만, 전 남자친구에 대한 그리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와 나누었던 섹스를 상세히 묘사하는 일기를 쓰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다. 그 일기를 남편이 읽게 되고 빌리는 남편과 전 남자친구 사이에서의 위험한 줄타기를 한다. 직접적인 외도의 현장이 그려지지는 않으나, 빌리가 회상하는 대담하고 화려했던 전 남자 친구와의 섹스 장면을 가감 없이 볼 수 있다. 결말은 매우 실망스러운 편이었는데, 결말을 빼고는 스토리라인도 재미있게 짜였다고 느꼈다. 23년에는 시즌2도 공개한다고 하니, 실망스러운 결말이 괜찮은 결말로 다시 매듭지어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겠다.


 내가 이 드라마에 마음이 끌렸던 가장 큰 이유는 여주인공 빌리가 두 아이의 엄마로서만 지내며 겪는 답답함, 우울함, 그리고 그런 감정들을 방치해 둔 남편으로부터 오는 일종의 회의감과 같은 감정들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아이 키우는 아줌마 마음을 가장 잘 표현했달까? 그런 장면과 내용이 첫 화에 두드러지게 나오는데, 첫 화는 주인공 빌리의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내 인생의 자유를 만끽할 때가 있었다. 그 세상에서는 무엇이든 거침없이 할 수 있었다. (중간생략) 그리고 지금은 그때가 그립다. 모든 것이 너무 변했으니까.”-에피소드 01 첫 장면     



내레이션과 함께 나오는 장면은 빌리가 전 남자 친구와 섹스하는 과거 회상 장면이기에 전 남자 친구를 그리워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적어놓은 대사와 싱크로율 100%의 같은 생각을 했던 내게는 아이와 가정이 없이 오롯이 홀로 나 자신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었던 그때를 그리워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면 나의 자유가 사라진 느낌을 받는다. 무엇을 하든 나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아이를 함께 고려해서 시간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씻는 것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그러니 그렇지 않았던 나의 거침없었던 과거가 미친 듯이 그리워지는 때가 종종 찾아온다. 드라마 속 빌리의 모든 행동과 생각들에 내가 모두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린 아줌마라면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생각, 겪어봤을 법한 감정들이 장면 속에서 표현되었다. 편안한 삶이지만 새로울 것도 흥미로울 것도 없이 육아하며 집에 있는 모습, 남편이 나보다는 아이에게 더 많은 시선을 쏟는 듯해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상하는 내 모습 등이 빌리의 표정과 대사를 통해 표현되고 있었다. 아가씨에서 아줌마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여자의 심리적인 변화와 모호한 여러 감정들을 이 드라마는 용케도 잘 그려냈다. 


드라마는 이어서 전 남자친구와의 섹스에 관한 그리움을 담은 빌리의 일기를 쿠퍼가 읽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황하는 빌리와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쿠퍼를 보며 다음 장면이 상상이 안 되었다. 그냥 뻔하게 화내고 변명하는 장면 정도를 예상했는데, 약간 폭력적인 둘의 섹스 장면이 나온다. 빌리의 과거를 몰랐던 쿠퍼는 빌리에게 “너는 도대체 누구야. 네가 원하는 것이 이런 거야?”라는 말을 하고, 빌리는 “Yes”로 답하며 그 섹스를 즐긴다. 그 이후 쿠퍼는 빌리가 좋아할 만한 위험천만한 섹스가 포함된 데이트를 준비한다. 아이를 맡아줄 사람도 직접 섭외하고, 빌리가 데이트에 입을 섹시한 옷도 직접 사 온다. 그리고 근사한 곳에서 식사를 마치고 대저택 속 남의 집 수영장에서 섹스하다 걸려서 도망치는 빌리 취향 맞춤 데이트를 선물한다. 이 부분에서 너무 예상하지 못한 전개로 이야기가 흘러가서 초집중모드로 드라마를 봤다. 전 남자 친구와의 섹스를 그리워하고 이를 일기로 쓰는 아내를 위해 취향을 저격한 데이트를 준비하는 남편이라…. 현실에서는 찾기 힘든 유형의 남편이다. 


어쨌든 빌리는 쿠퍼의 노력에 만족하고 둘은 이렇게 고비를 넘기는 듯 보였으나, 빌리는 계속 전 남자 친구와의 과거 이야기와 섹스를 일기로 남기고 이후 여러 일들이 일어난다. 쿠퍼에게도 힘이 되고 의지가 되는 매력적인 여자가 나타나 쿠퍼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런데도 쿠퍼는 빌리와의 관계를 어떻게든 재건해 보고자 노력한다. 일기를 읽은 후에도, 다른 여자가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에도, 빌리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해도, 쿠퍼는 빌리의 전 남자 친구를 찾아가서 경고를 날리면서까지 빌리와의 관계 지키기에만 몰두한다. 그런데도 빌리는 계속 흔들린다. 빌리의 절친한 친구인 샤샤는 말도 안 되는 생각과 행동을 보이는 빌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쿠퍼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내, 널 지키려고 싸워왔어.”    


 

드라마에서 진행되는 일련의 에피소드들을 보면서 우리가 흥미로울 수 있는 이유는 새롭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그간 봐오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참을 수 없는 성적 욕망을 가지고 이를 채우거나 표출하는 주체는 남편, 이를 감내하거나 맞서는 주체는 여성으로 설정하는 일종의 정형화된 프레임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런 프레임을 서로 바꿔 끼움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흥미를 제공하고 있다. 고정된 성역할을 바꾸어 빌리라는 여성이 주체할 수 없는 성적 욕망을 표출하고 쿠퍼라는 남성은 그런 여성을 다시 가정의 평범한 아내로 살아가도록 회유하고 노력하는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우리가 매체 속에서 자주 접하던 내용이 아니다. 늘 당하기(?)만 했던 여성에게 사고를 치는 역할을 배당한 이 드라마는 나에게 약간의 통쾌함을 주기도 했다. 여타 드라마 속의 여성들을 보며 느꼈던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조금은 해소된 듯한 느낌이랄까. 비단 쿠퍼와 빌리의 관계뿐만 아니라, 빌리와 샤샤가 함께 지냈던 거침없던 과거의 모습들 속에서도 거리낄 것 없는 자유가 내게까지 느껴졌다. 일종의 대리만족을 주었다.


8화가 이어지는 동안 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갈대처럼 흔들린다.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워줄 수 있고 위험한 섹스도 서슴지 않는 전 남자친구, 브래드에게 본능적으로 끌리는 자신을 스스로도 막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자신을 떠남으로써 가정을 상실했다고 느낄 때, 빌리는 그 가정으로 돌아가기 위해 울며불며 뛰고 또 뛴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잃고 나서야 느끼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결국 남편인 쿠퍼도 빌리로부터 마음을 돌리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조금씩 여는 장면이 연출된다. 그리고 빌리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던 모습과는 다르게 빌리와 브레도 둘 다 놓칠 수 없다는 내레이션으로 시즌1이 마무리된다. 빌 리가 가정에 충실한 삶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기대했던 내게 브레드의 집 문을 여는 빌리의 모습으로 끝나는 시즌 1의 결말은 내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즌2에도 시청자들을 사로잡으려는 떡밥을 투척한 것이겠으나, 어떻게 브레드의 집 문을 열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드라마 속에서 ‘브레드’라는 전 남자친구, 그리고 그와의 섹스가 상징하는 바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아줌마는 감히 가져서도 안 되고 가질 수도 없는 것을 의미한다. 아줌마로서 가지면 안 되는 금기의 무언가에 대한 상징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갖고 싶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 소중한 것들은 버려야 하는 그런 대상이다. 결말까지 이야기가 전개되기 전, 빌리는 가질 수 있는 것 85%, 가질 수 없는 것 15%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갖고 싶은 것 전부를 갖는 것은 신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이고, 가지고 싶은 것의 85%가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전부라는 것이다. 빌리에게는 전 남자친구인 브레드와의 섹스가 가질 수 없는 15%라고 밝히면서, 85%만 갖고 만족하겠다고 다짐한다. 


나에게는 온전한 ‘홀로의 자유’가 브레드와 같은 것이다. ‘홀로의 자유’가 아줌마에게 주어질 수 없는 것이라면, 온전한 가정, 따뜻한 남편,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매우 소중한 것이고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아가씨가 아니라 아줌마로 살기로 결정했다면, 빌리의 말처럼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의 85%가 내가 가질 수 있는 전부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가질 수 없는 것, 내어줘야 하는 것은 그렇게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결말이 어찌 되었건, 드라마 시청 후 내가 내린 나의 결말은 그렇다. 


우리는 인생에서 여러 변곡점을 만난다. 여자라면 아가씨에서 아줌마로 넘어가는 시기도 주요한 변곡점으로 셀 수 있다. 이 드라마는 그런 점에서 하이틴의 성장드라마처럼 아가씨에서 아줌마로의 이행과정을 여러 갈등과 혼란을 통해 잘 표현했다. 장면들이 무척 자극적이고 가감 없지만, 본질적인 메시지는 그런 것을 담고 있다고 느꼈다. 기존과 다른 또 다른 맥락의 성장 드라마가 보고 싶다면, 경험하지 못했던 성적으로 거침없는 자유의 시간들을 대리만족 해보고 싶다면, 이 드라마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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