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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Mar 29. 2024

2023년 이혼율 통계에 비춰본
8년차 부부 세계

여보, 우리 이혼 안하고 살고 있는거 대단하지 않아?

여느 날과 똑같은 평일 저녁, 퇴근한 남편과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여보, 우리 벌써 결혼한지 8년차야. 너무 대단하지 않아?'라고 말했다. 남편은 그게 뭐 대단하냐고, 다들 오래토록 잘만 산다고 말했다. 나는 '아니야, 여보랑 같이 살아주고 있는 내가 대단하고, 나랑 같이 살아주는 여보도 대단한거야!'라고 말했는데, 여전히 수긍하지 못하는 반응이였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살아온 환경도, 생각도, 취향도, 삶의 방식이 너무나도 다른 둘이 만나서 8년을 같이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해서 인간으로 만들어가는 양육과 돌봄, 교육까지 함께 하고 있는 우리는 너무너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통계청의 <2023년 혼인·이혼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3년의 혼인지속기간별 이혼 구성비는 5-9년(18.1%), 4년 이하(18.0%), 30년 이상(16.0%)  순으로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즉, 혼인유지 10년 미만 내 이혼율이 36.1%에 달한다는 것이다. 10쌍 중 3-4쌍은 결혼한지 10년 이내에 이혼한다는 것인데,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거 같기도 하다. 뭐, 안 맞으면 빠르게 서로 각자 갈길 가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이혼율 통계에 비춰보니, 8년간 결혼생활 유지한 것이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남편 말이 맞는거 같기도 하다. 


우리도 이혼의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 말하기도 부끄러운 여러 사건들과 험난한 시간을 거쳐왔다. 애가 있음에도 가출도 해보고, 이혼서류를 작성하기도 하고, 시부모님이 '내가 아들을 잘못키웠으니 용서해달라...' 뭐 이런말씀까지 하시기도 하셨으니, 결혼생활이 순탄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 계속함께하기로 결정했고(지금도 이 결정은 충분히 번복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세상에 빛을 보도록 한 아이들을 안정적인 가정 환경 속에서 함께 키우기로 합의했다. 여전히 우리 부부 사이는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지만, 그냥 그게 사람 사는게 아닌가 싶긴 하다. 


그런데 최근 곽경희의 <남편이 자살했다>라는 책을 통해, 이별 없이 오롯이 부부가 함께하는 것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혼인을 유지할 이유가 없이, 이혼을 선택할만큼 절벽끝에 서 있는 부부라 할지라도, 그런 틈에서도 남편은 나를, 나는 남폄을 사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도록 한 책이었다. 


책은 알코올중독에 걸려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남편이 아이 넷을 남겨두고 극단적 선택을 후에 겪는 아내의 여러 혼란과 어려움 그리고 회복을 담고 있다. 제목이 너무 충격적이서, 그냥 무심코 집어 들었는데, 기혼자나 자살 유가족들이 읽어봄직한 책이었다. 


죽기를 바랬던 남편이고, 이혼을 앞둔 날 남편이 그리 되어서, 남편의 죽음이 슬픔보다는 분노로 다가왔던 저자임에도 불구하고, 점차 남편이 자신과 아이들을 사랑한 방식이 무엇이었는지를 남편이 떠난 뒤에 알게된 내용들이 나온다. 책의 초중반에는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가득히 흐르지만, 점차 남편의 빈자리가 어떤 빈자리인지 구체적으로 느끼며 남편이 아내와 아이들을 그만의 방식으로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남편은 술에 취해 늦은 밤에 집에 들어오면 소파에서 쓰러져 자든가 빈방이 있을대는 그 방에 들어가서 잤다. 그런데 그는 술이 깨면 어김없이 내가 자는 침대에 와서 잤다. 그리고는 토라진 나를 꼼짝 못하게 꼭 안고 자는 버릇이 있었다. 그는 자다가도 느슨해져서 떨어져 자게 되면 나를 다시 안고 잤다. 그러고 보면 온전히 혼자 잔 날은 몇 날 되지 않았다. 남편이 떠나고 혼자 자게 되면서부터 나는 가끔 몸에 한기가 들기 시작했다. (중략) 그때는 그의 품이 소중한지 몰랐다. 그 당시에는 그가 나를 안고 자는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고, 그저 술 마시고 늦게 와서 나를 안고 자는 게 밉기만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 (p.170-171)


"술에 취해 정신이 없어도 남편은 아이들을 위해 치킨이나 빵, 케이크, 비싼 과일들을 사다 날랐다. 게다가 그중에서 제일 비싸고 맛있는건 엄마 몫이니 너희들은 먹지 말라며 아이들에게 당부했었다. 그리고 나중에 우리에게 그것을 먹어봤냐고 꼭 물어보았고, 맛있었다고 하면 잔뜩 취한 날에도 그걸 또 사 가지고 왔다."(p.167-168)


매일 늦게 들어오고, 아이들과 식탁을 함께 하지 않고, 매일 술에 취해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일상이었을지라도 저자의 남편은 나름대로 진심으로 가족들을 무엇보다 아내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내 남편이 그런 알코올중독자였다면, 그 사이에서 실낱같은 사랑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나도 내 남편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기로 했다. 


나와 남편은 사랑의 언어가 다르다. 나는 말로 표현해주길 원하지만, 남편은 행동으로 책임감으로 표현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한다. 나는 말로 해주는 표현이 사랑이라고 느끼는데, 거의 해주지 않는다. 가족을 굶기지 않는 것, 안정적인 환경에서 살게 하는 것이 남편에게는 사랑의 표현이다. 


남편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 찾기! 프로젝트 해보자. 지금은 우리 사이가 좋아서, 많이 찾을 수 있을 거 같긴한데, 다들 한번씩 해보시길 .. 뭐 이런거 안해도 충분히 사랑하고 있다면 할 필요가 없지만, 남편이 날 사랑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면, 한번 해보시길. 왜냐면, 사랑하지 않으면 같이 안 살지 않을까? 일말이라도 사랑하니, 함께 부부라는 이름으로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찾은 남편이 나를 사랑한다는 증거들 


1. 나의 커리어를 지원해주기 위해 매주 반차를 쓰고 아이들을 돌봐준다. 

2. 성과급을 받으면 내게 후하게 나눠준다. 

3. 나의 부모님께 잘하고, 자주 찾아뵙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4. 가끔 내게 귀엽다고 해준다. 

5. 청소, 설거지 등의 집안일을 함께 한다. 

6. 출근 후, 내게 하루에 1번 이상 전화를 한다. 

7. 내가 아프면 아이들을 전담해서 돌봐준다. 

8. 혼자서 시댁에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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