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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미 Nov 29. 2020

말하지 못한다는 것은 때때로 사랑한다는 말의 반어법.

태양도 때로는 도망가고 싶다.

"나 지금 배고파 죽을 거 같아 ㅠㅠ 아무거나 추천 좀 해."라는 말에 "Trust me!"와 함께 훅 날아온 윙크.

오 마이 가쉬. 아일랜드 사람들은 남녀노소 윙크를 참 잘한다. 사람 설레게..


훌륭한 문화다.


아일랜드 킬라니의 어느 한 펍에서


무슨 메뉴를 줄 건지 설명도 없어 기네스로 갈증을 달래며 기다리는데 연어가 함박눈처럼 뭉텅뭉텅 뿌려진 푸짐한 크림 파스타가 나왔다. 배고프다고 해서 인지 원래 이런 양인지, 족히 2.5인분은 될 법하다(옆에서 보면 산처럼 수북했다). 세상에, 내가 그동안 수없이 먹어본 크림 파스타가 맞나.  재료들만 잔뜩 모여있는데 버겁기는커녕 고소할 뿐이다. 매콤한 재료 하나 없이 느끼함을 단단히도 잡았다. 의 초점이 순식간에 돌아오며 피곤함이 허겁지겁 도망간다. 버터에 바싹 구운 빵을 부드럽고 깊은 소스에 곁들여 먹으니 금상첨화, 너무너무 맛있다. 정신없이 먹는 와중에 맥주를 새 걸로 바꿔준 직원이 앞에 앉는다.


"그래서 지금까지 밥도 안 먹고 뭐 했는데?"라는 물음으로 시작해 "왜 아일랜드로 왔어?"라는 얘기까지 넘어갔다.




슬슬 매거진의 제목에 대해 밝힐 때가 된 것 같다. 사실 나의 여행은 여행이라기보다 도피였다. 여행의 이유를 지금에서야 쓰는 이유는 비록 우울함에 등을 강하게 때려 맞듯이 밀려 시작한 여행이었지만 지금의 내 글에 우울함이 묻어있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항상 낙천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던 나는 불현듯 찾아온 이 불청객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부터 아무리 피곤하게 움직여도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좀 쉬면 낫겠지'라고 안일하게 내버려 두던 두통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좀 피곤한가?' 충 진통제를 꿀꺽 삼키는 게 일상이 되었다.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스트레스는 어느새 아주 높은 곳까지 찰랑찰랑하게 쌓여 통을 통째로 쓰러트리지 않는 한 비우기가 힘들 것 같았다. 처음 인지한 나의 예민함과 짜증이 너무 낯설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항상 밝은 에너지로 가득해 주변 사람들에게 '넌 마치 태양 같아!'라는 말을 듣고 살아온 내가! 하루 종일 누구와도 수다를 떨 수 있을 것 같던 나는 어느 날부터 사람이 내는 모든 소리에 숨이 막혔다. 노래는커녕 내비게이션 소리조차도 짜증스러워서 통째로 떼어버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는 산소통의 산소가 빠르게 없어져간다는 사실 조차 몰랐다.


 리고 나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가족에게 표현하는 조차 서툴렀다. 그래서 끝내 소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허겁지겁 표를 사 아무 계획 없이 최대한 먼 곳으로 도망치듯 떠났던 그 새벽에도 어리둥절해하는 가족들에게 난 웃으며 "걱정하지 마! 잘 다녀올게."라고 다정하게 인사했다.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도 말하지 못한다는 것은 때때로 사랑한다는 말의 반어법.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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