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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미 Jul 08. 2021

살균의 시간

"햇빛 쬐고 싶어!"

어둑어둑 먹구름이 낀 창 밖을 보다 무심코 튀어나온 말이었다.


연신 비가 내린다. 비가 그쳤다 싶으면 흐리고, 흐렸다가 또 비가 다. 날씨 영향을 유난히 많이 받는 사람인 나는 며칠 내내 그야말로 아직 덜 말라 무거운 빨래처럼 축축이 늘어져있다.


이런 날은 눈이 아프도록 겁게 찬란하던 그때가 그리워다.




첫 유럽여행으로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한 지 이틀 째 되던 날. 우리는 아침을 먹기 위해 바다가 넓게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다. 이미 두브로브니크 오래된 성벽을 따라 일치감치 아침산책을 마친 후였 여기에 버터 바른 따뜻한 빵과 커피 해지면 그야말로 완벽한 하루의 작이 될 것이었다.


11시가 넘었는데도 카페는 아직 영업 준비 중이었다. 멀뚱히 만 바라보며 괜히 서성대던 우리에게 기꺼이 먼저 자리를 내준 친절한 직원 덕분에 제일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었다.


우리는 테라스 자리에 가만히 앉아 그들이 분주하게 영업준비를 하는 소리를 들으며 닷물 표면에 부서지는 빛 알갱이들을 구경했다. 한번 손을 대면 한 개가 두 개가 되고 두 개가 네 개가 되어 순식간에 불어나는 마법에 걸린 전설 속의 보석 같았다. 무지갯빛 오팔이 서로 부딪히며 불규칙하게 찬란함을 생산해냈다. 말 그대로 '마구마구' 쏟아지는 보석을 보며 어렸을 때 읽었던 화수분에 관한 동화를 떠올렸다. 그 찬란한 입자들은 아름다움을 넘어 신성해 보일 지경이라 보는 것만으로도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겸손하게 눈이 반쯤 저절로 감기었다.


'예약은 잘 됐을까 길 잃어버리면 어떡하지 현금 좀 더 뽑아놔야 되나 한국에서의 그 일은 잘 처리됐나 전화해볼 필요 없나 아빠는 식사하셨나 아 그거 주문했어야 했는데 너무 늦게 돌아가나 돌아가면 뭐부터 해야 하지 아니 이왕 온 거 일주일 더 있을걸'


그 순간 한국에서부터 질질 끌고 온 모든 불필요한 것들이 소독되었다. 그림자 진 깊은 곳까지 침투해 내게 도움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공격했다. 그런 점에서 판타지 영화나 게임에서 주인공이 회복될 때 빛에 휩싸이는 시각 효과는 상당히 일리 있는 표현이다.


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직원이 이제 준비가 됐다며 말을 걸어올 때까지 각자 깨어지는 눈부심을 구경했다. 꼭 필요한 살균의 시간이었다.


 

가끔 '햇빛 멍'이 필요하죠. 특히 요즘 같은 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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