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대 렌트하는 것이 계획의 전부였던 아일랜드 여행에서 다음 목적지를 정하기 위해 썼던 방법 중 제일 선호했던 것은 현지인의 추천을 받는 것이었다.
북 아일랜드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어디라도 한군 데 더 들려보고 싶어 지도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이제 북 아일랜드로 간다고? 그럼 타라의 언덕에 들렀다 가."
아일랜드 내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라고 칭해지는 타라의 언덕은 중요한 의식을 행해왔던 유적지이자 아일랜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훌륭한 전망대다. 산 꼭대기에 올라 빼곡한 나무와 호수를 감상해본 적은 있어도 시내를 내려다본 적은 없는 나로서는 마음에 쏙 드는 추천지였다. 날이 좋으면 아일랜드의 반이 보인다는데 금상첨화, 오늘은 드물게 맑디 맑은 날이다.
사진으로 미리 찾아본 타라의 언덕은 푸른 잔디밭이 끝도 없이 펼쳐진 곳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쏟아지는 비로 인해 땅이 내내 젖어 있어 아직 한 번도 초원에 앉는 여유를 즐겨보지 못했던 나는 비로소 그 순간이 찾아왔음을 느꼈다.
시원한 바람에 탁 트인 시야, 그리고 부드럽게 사박사박 소리를 내며 눕는 들판. 크, 여기에 앉아 적어도 책 반권은 읽어야겠다. 매일 아침 먹어 이제는 좀 질린 퍽퍽한 브라운 브레드도 여기서는 맛있을 것 같았다. 주섬주섬 간단한 도시락을 챙겨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나 보았던 꿈의 언덕으로 떠났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걸. 사방에 각양각색.. 은 아니고 각양 각종의 응가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수도 없이 널브러져 있는 게 아닌가. 연약한 풀잎들이 어떻게든 수습해보려 애처롭게 몸부림쳤지만 그들의 무례함은 가려질만한 것이 아니었다. 무뢰한들이 성지에 쳐들어와 깽판을 쳐놓았다.
개는 당연하겠고 뭐야 이건.. 염소...? 말이 왔다 갔나 싶은 것도 있었다. 아니면 소가 슬렁슬렁 이 높은 데까지 올라왔었나...(설마 사람은 아니었겠지....)
넓디넓은 초원인 것도 맞았다. 막힘없이 시원하게 광활한 시야인 것도 맞았고. 그런데 높은 곳 특유의 차갑고 촉촉한 바람이 상쾌하지 않았다. '최고로 신성한 장소'라는 말이 서글펐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holy sh.....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