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과학도다 보니 '쉽게 쓰인'이나'누구나 알 수 있는' 따위의 문구에 홀랑 넘어가 책을 고르곤 하는데 아무리 그들이 쉽게 풀어썼다고 자부해도 읽다 보면정신이 아득해질 때가 있다(사실 많다).
한 번은 어느 책의 본문에서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이라는 서술어를 사용했는데 나는 단번에 이 서술어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내가 모르는데 어떻게 우리 모두가 안단 말인가. 정녕 나만 모르는 걸까. 다른 문과생들한테 읽혀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과생들은 정말 이 개념을 당연하게 알고 있는 걸까.
이과, 문과를 이분법 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어 적어본다.
대학생 때 컴퓨터 그래픽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6개월에 걸쳐 소수로 진행됐던 그수업은 다양한 나이대의 다양한 직업군이 모여있어서 서로가 서로의 분야를 신기해하며 단번에 친해졌었다.
하루는 조명에 관해 배우던 날이었다. 선생님은 기본 원리를 설명하신 후 각자 원하는 시간, 혹은 형태의 조명을 만들어보라고 하셨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늦은 오후의 길게 늘어지는 황금빛 태양을 상상하며 버튼을 이리저리 클릭했다. 그때 옆에 앉은 전문 과학도 A 씨가 내가 만든 조명이 마음에 들었는지 설정값이 어떻게 되냐며 말을 걸어왔다.
광원의 기울기랑 빛의 세기 다 똑같이 설정했는데 왜 쎄미씨거랑 제거랑 느낌이 다르죠?
색 때문인 것 같아요. 제거는 노란색 비율이 높거든요. A 씨 조명은 파란색이 많이 들어가서 새벽녘처럼 좀 차가워보이네요.
예..? 보는 색이랑 온도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요?
엄.. 다가오는 느낌이요. 보통 노란색 조명이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이라면 파란 형광등은 조금 서늘하고 차갑잖아요.
예..? 왜죠..? 색이 다르게 보이는 건 가시광선의 파장이다르기 때문에.. 어쩌구.. 저쩌구.. 그러니까 온도가 아니고..블라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