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람이 되는 과정
말을 많이 하는 날에는 돌아서서 꼭 한두 가지 후회가되서 곱씹는 말이 있다. 보통은 내가 누군가를 쉽게 단정 지어 이야기했던 대목이나, 내가 나의 의견에 힘을 싣기 위해 배제한 상황이나 대상들에 대한 말들이다. 매도하거나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말들을 싫어하고 권위주의나 권력에 대한 반항심이 있으면서도 나 또한 그런 생각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은 그래도 돌아서서 내 단어와 생각들을 점검하고 반성이나 하지, 예전에는 그러지도 않았다. 책을 읽고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계속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빠르게 내 생각을 정리하고 누군가를 판단하는 건 직관이 발달한 성향도 한몫할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내가 그렇게 정리를 해버려야 다음으로 넘어가고,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 도 있는 다양성에 대한 고려는 언제나 불편하고 성가신 일이니까 나의 편의를 위해 그래왔던 것도 같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는 전방위적으로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삶의 질'도 좌우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삶의 격'도 챙기기 위해서는 여유가 필요하다.
올해 초 첫째 아이 학교에 상담을 하러 갔다. 담임 선생님은 상담선생님을 오래 한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다. 아이가 항상 즐겁고 적극적으로 생활한다 하시면서 학교에서 아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고 했다.
" 그럴 수 있어."
가끔 집에서도 그 말을 자주 쓰길래 그러려니 했는데, 학교에서 그 말을 자주 써서 그 말을 유행어처럼 만들어버렸다고 했다. 선생님은 다음에 책을 쓰면 제목을 '그럴 수 있어'라고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하셔서 같이 소리 내 웃었다.
그 말이 진반농반으로 아이들과 나누는 유행어처럼 쓰이는 말일지라도,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면서 '여유'와 '관대함'을 장착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도 그런데 하물며 그런 아이를 키우는 나는 더 말랑한 마음으로 세상을 받아들여야지 생각했다. 단편적인 모습을 통해 쉽게 대상을 판단하는 나의 언어와 생각들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에 나날이 조심하기를 바란다. 누구나 그럴 수 있고, 나도 그럴 수 있다.
나는 원치 않지만 앞으로도 대상을 쉽게 판단하거나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실수 할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그런 생각과 말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건 계속해서 돌아보고 다시 한걸음 더 나아질 걸음을 멈추지 않을 거다. 매번 부끄러워하면서 다듬어 나갈 것이다. 죽을 때까지도 완전한 사람은 되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과정을 놓지는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