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그 재미와 의미
일본 스타일과 중국 스타일!
일본인하면 이어령 선생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먼저 떠오른다. 중국인하면 베이징행 비행기에서 로얄살루트를 꺼내 벌컥벌컥 마시던 젊은 여성이 떠오른다. 대륙 스케일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일본인을 축소지향이라고 말하고, 중국인을 대륙 스케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렇게나 던지다 보면 가끔씩 맞는 그런 류의 말이 아닌가 싶다.
여자 브리티시 오픈 마지막날에 스코어보드를 들고 다니는 역할을 맡았다. 이 조에는 일본 선수 아야까 프루에와 중국계 미국 선수 로즈 장이 있었다. 둘째날 이미향 선수와 같이 하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고, 세째날 전인지 선수와 같이 하면서 많은 즐거움을 누렸다. 마지막 날에 한국 선수가 없어 아쉬웠지만, 로즈 장이라는 차세대 주자와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조를 바꿔 달라고 부탁하지 않고, 원래 짜인 대로 출발했다.
일본인 선수 아야까 프루에는 키가 153 센티미터로 LPGA 선수 중에 가장 작았다. 의상은 촌스러운 형광색이었고, 무엇 하나 주목할만한 것이 없었다. 1번 홀에서 티샷을 하고 걸어가는데, 자원봉사자와 인사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가던 길을 돌아와 나를 포함한 자원봉사자에게 일일이 먼저 악수를 청했다. ‘어라! 예의가 제법 있네!’
미국인 선수 로즈 장은 키가 크고 어깨가 당당하게 벌어졌다. 다리가 특히 길었다. 방송은 로즈 장의 화려한 각선미를 카메라에 잡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는 LPGA에 진출하고 첫번째 대회에서 우승했다. 미국인이지만 코치와는 중국어로 이야기했고, 코치들은 자기들끼리는 중국어로만 이야기했다. 골프업계는 그녀의 상품성을 높이 사고 있다. 캘러웨이와 아디다스가 그녀를 대표 얼굴로 삼으려 하고 있고, AT&T라는 빅 스폰서가 후원하고 있다. 그런 후원 덕분인지 의상도 뛰어나다. 그녀의 코치가 촌스러운 색상의 옷을 입은 반면에, 올드머니 칼러로 구성된 그녀의 의상에는 세련미가 넘친다. 일부 한국 선수의 지못미 의상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녀의 가방과 공에는 스탠퍼드 대학의 로고가 선명하다.
일본의 작은 선수와 중국의 큰 선수는 18홀 동안 단 한 번도 말을 섞지 않았다.
로즈 장의 플레이는 화려했다. 숏아이언 스윙의 피네스는 여자 선수 중 단연 탑이었고, 핀 근처에 붙이는 샷도 일품이었다. 많은 버디를 쏟아 냈지만, 보기는 더 많이 쏟나 냈다. 좋게 봐준다면 폼은 프레드 커플스와 같았고, 공격성은 로리 맥길로이와 같았다. 분명히 매력적인 선수였다. 한국 선수 또는 한국계 선수 중에 이 선수의 상품성을 넘어설 선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야까 프루에의 플레이는 정반대였다. 최단신이지만 그녀의 드라이버 비거리는 짧지 않았다. 그렇다고 의외의 호쾌한 타법도 아니었다. 못하는 것도 없고 눈에 띄는 것도 없었다. 그녀 샷의 백미는 14번 홀에서 나왔다. 세컨드샷에서 핀까지 110야드 밖에 남지 않았다. 핀은 왼쪽 앞쪽에 위치했고, 그린은 매우 넓었다. 그녀는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린 중앙을 향해 볼을 쳤고, 볼은 그린 중앙에 안착했다. 먼 퍼팅을 남겨 놓았지만, 너무 쉽게 투퍼팅으로 마무리하고 다음 홀로 걸어갔다.
아야까 프루에는 쓰리퍼팅이 없었다. 아니다. 딱 한 번 불운의 쓰리퍼팅이 있었다. 반면에 로즈 장은 수시로 쓰리퍼팅을 했다. 아야까 프루에는 오늘 2 언더파를 쳤고, 로즈 장은 3 오버파를 쳤다. 월튼 히스와 같이 퍼팅 그린이 난해한 이런 코스라면, 로즈 장은 백번 중에 90번은 아야까 프루에에게 질 것이다.
로즈 장에게는 엘리트 의식이 있었다. 그의 캐디는 예의가 없었다. 관중을 대하는 태도, 골프를 대하는 태도가 엉망인 캐디였다. 뉴머니 색상의 옷을 입은 그녀의 코치진은 분주하게 코스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몇번은 관람 가이드라인을 분명히 어겼다. 로즈 장의 팀은 단체로 볼썽 사나웠고, 격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나마 로즈 장이 제일 나았다.
아야까 프루에는 경기가 끝나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자원봉사자에게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로즈 장은 자원봉사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지만 진정성은 1도 느껴지지 않았다.
선수들은 18번 그린에서 경기를 마친 후에 레코더 오피스에 가서 스코어 카드를 제출하고 기다리는 팬들에게 사인을 해 주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18번 그린과 레코더 오피스 사이에서 사인을 기다리는 어린이들도 제법 있었다. 대부분의 선수가 그대로 지나치고 스코어 카드를 제출한 후에 다시 오지만, 아야까 프루에는 팬들을 기다리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일일이 모든 관객에게 사인을 해 준 후에 스코어카드를 제출하러 갔다.
아야까 프루에는 인상적인 선수였고, 일본 선수들은 대체로 아야까 프루에와 비슷했다. 한국 선수 중에는 신지애가 가장 팬들에게 친화적이었는데, 그의 친화성에는 진정성이 있어 보였다. JLPGA가 제대로 된 골프 조직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었다. 그녀는 정말 키가 작았지만, 축소지향이라는 단어와는 맞지 않았다.
푸틴과 베레조프스키를 다룬 뮤지컬 [파트리옷]에서 ‘작은 사람은 악에 바친다’라는 대사가 나오고, 그 ‘작다는 것이 키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라는 대사도 나오는데, 정말로 그랬다.
그리고 ‘대륙의 스케일’은 소위 말하는 ‘축소지향’에는 아직 비빌 수 없다고 오늘 나는 성급하게 결론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