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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Mar 07. 2024

진실을 흘러 보내다

London Life 2.0

진실을 흘러 보내다.

  

  

와이프가 인근 커뮤니티 센터에서 진행하는 불어 강의를 들으러 가는데 태워달라는 거예요. 태워주고 집에 오려다가 두 시간을 기다리기로 했죠.


주변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초밥집을 찾는데 없더라고요. 스시 대신 치킨이 생각나더라고요. KFC에 들어갔어요. 닭 6조각과 콜라를 주문했어요. 3파운드만 더 내면 감자칩도 주고, 샐러드와 디저트도 준다는 거예요. 그러라고 했죠.


그랬더니 나온 게 패밀리 바스켓이더라고요. 닭다리만 꺼내 먹고 나머지는 들고 가기로 했어요. 와이프 가져다줘도 칭찬은 못 들을 것 같아 걱정이 되더라고요. 중간에 홈리스가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코너를 도니 정말 홈리스가 있더라고요. 이거 먹을래요? 했더니 뭐냐는 거예요. 감자칩과 샐러드 같은 것이라고 했더니 고맙다고 받더라고요. 콜라도 먹을래요? 했더니 콜라는 싫다는 거예요. 그래서 콜라만 빼고 들고 있던 커다란 백을 전해줬죠.


그런데 뒤에서 어느 할머니가 ‘What a man!’ ‘Lovely, Lovely’를 연발하는 거예요. 저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가려던 방향을 봤죠. 쓰레기통이 있더라고요. 홈리스가 없었다면, KFC 봉지는 쓰레기통에 들어갔을 거예요. 뒤에서는 여전히 러블리 소리가 이어지고 있고요.


하나님이 길거리 홈리스 모습으로 있을 수 있다고 말하잖아요. 주변 돌보기를 늘 주님 보듯이 하라는 의미잖아요. 이 경우에 할머니가 주님이었던 것 같아요. 저를 칭찬함으로써 부끄럽게 만든 것이죠.



‘드러내어 징계함 아닌, 드러내어 고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드러내어 부끄럽게 하지 않고, 더욱 단단히 할 은혜와 사랑 전하게 할 하나님 그 빛‘이란 노래가 떠오르더라고요. 우리 교회 사모님이었던 장윤영이 부른 버전으로 ‘하나님의 빛’이란 노래를 많이 들었었거든요.


저는 뒤를 돌아 할머니를 대면해야 했어요. 그렇게 부끄럼과 대면했어야 했죠. 부끄럼을 대면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나님 대신에 진실이란 말을 넣어도 될 것 같아요. 하나님의 그 따듯한 빛 앞에서 빛을 등지고 사라진 거죠. 바보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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